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

김영랑 명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무명시인M 2021. 4. 1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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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명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Photo Source : www.pixabay.com

김영랑 명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 블로그는 이 시를 '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카테고리)로 선정하였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출처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원본 김영랑 전집, 한국문화사, 1997.

 

🍎 해설

국민 애송시다. 잘 다듬어진 시어와 리드미컬한 운률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송되어 온 시다. 꽃이 지면 져서 슬프고, 꽃이 피면 곧 슬퍼해야하는 게 시인의 마음이다.

 

봄은 모란이 피는 기다림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동시에 곧 모란이 떨어져 눕는 좌절과 슬픔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망이 좌절로 이어졌듯이, 좌절은 다시 소망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고 확고하게 노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좌절이나 절망을 좌절이나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김영랑 시인(1903~1950)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한국 순수서정시의 물길을 연 시인중의 한 사람. 19193.1운동을 주도하다가 6개월간 옥고. 뛰어난 서정시인이자 항일저항시인. 김영랑은 주로 순수서정시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어 속을 흐르는 조용한 저항의식이 담긴 민족주의적 시를 쓰기도 하였다.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린 섬세한 시적 에스프리를 개척하였다.

 

본명은 김윤식. 정지용 시인이 영랑이라는 아호를 지어 줬다. 그 후로 시인은 본명 대신에 김영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정지용 시인은 김영랑 시인을 당대의 서정시인 베스트 5 정도로 아주 높게 평가한 바 있다.

대통령 공보비서관이던 김광섭 시인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정부 공보처 출판국장 역임(1). 유일한 취직 경력.

 

시인의 고향은 전남 강진. 대숲과 모란으로 둘러싸인 강진 생가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시를 썼다. 영랑은 생가 정원에 수백그루의 모란을 가꾸었다. 집 옆에 정구장을 만들고 자신의 체력관리를 위해 정구를 쳤다. 휘문고 재학시엔 학교대표 축구선수(중퇴). 영랑은 임방울과 이화중선의 국악 남도창을 좋아했다. 이화중선의 동생의 소리가 좋다고 하면서 그녀의 소리엔 촉기가 있어 더 좋다고 했다. 촉기가 무엇인가 물으니, 그것은 같은 슬픔을 노래 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는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을 말하는 것이라 했다. 자신이 직접 북을 치는 것도 좋아했다.

 

6.25전쟁 때 아군과 적군의 공방전 틈에서 유탄을 맞고 별세. 향년 47. 1950년 별세할 때까지 계속 시를 썼다. 사후에야 금관문화훈장(2008). 독립유공훈장 건국포장(2018).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전남 강진 영랑 생가. 정원에 모란꽃이 많다. 영랑 생가를 훌륭하게 보존해 온 강진군청에게 찬사를 보낸다. 사진 출처: 강진군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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