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수필

박참새 출발선 뒤의 초조함

무명시인M 2023. 11. 23.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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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새 출발선 뒤의 초조함.

박참새 출발선 뒤의 초조함. 2023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인 박참새 시인이 낸 첫 책.

출발선 뒤의 초조함

/박참새

2023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박참새 시인은 일약 문단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시는 오는 12월에야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우선 그가 낸 첫 책을 오늘 여기에 소개한다.

 

가상실재서점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큐레이션 서점 모이(moi)’를 운영하며, 도서를 리뷰하거나 낭독하는 팟캐스트 참새책책을 진행하는 등, 책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지속해오고 있는 박참새의 첫 책 출발선 뒤의 초조함이 출간되었다.

20216, 문화예술 큐레이션 플랫폼 ANTIEGG를 통해 영상과 녹취록으로 공개된 대담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대담에 참여한 사람은 김겨울, 이승희, 정지혜, 이슬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2030 세대의 사랑과 선망을 널리 받고 있는 네 여성 창작자이다.

 

대담의 주제는 출발선 뒤의 초조함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제 막 어떤 일의 출발선 혹은 인생의 한 전환점에 선 자가 그보다 먼저 달려 나간 이들에게 듣는 이야기다. “앞으로 어떻게하면 되는지그 막막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한다기보다는 그동안 어떻게해왔는지초조함과 두려움을 극복해낸 구체적인 사례에 초점이 맞춰진 대화들이다.

 

더 이상 언제 울릴지 모르는 출발 신호가 두렵지 않다. 내가 발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이 바로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으니까. 출발했다가 힘들면 언제라도 잠시 멈출 수 있고, 길을 잘못 든 것 같으면 기꺼이 거꾸로 되돌아가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길고 긴 인생에서 출발선에 서는 때는 단 한 번 유일무이한 순간이 아니라 때때로 자주 찾아온다. 출발이 늦었다고 해서 결승선 도착마저 늦는 것은 아니며, 혹여나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도 아니다. 비로소 출발선 앞으로 대범하게 나아가 마음 놓고 후회할 준비가 되었다.

 

시작하는 마음

/박참새

사실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있을 때면 여전히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두렵고 초조하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을 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냐고 말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닿아 있다면, 당신은 내게 참 고마운 사람이다.

- 출발선 뒤의 초조함소개문에서 발췌. 🍒

 

출처 : 박참새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 세미클론, 2022.

 

🍎 박참새 시인

박참새 시인, 28세. 사진은 출판사 민음사 제공.

2023년 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통상의 시 등단 이력이 없는 젊은 창작자 박참새(28) 작가가 선정됐다. 주관사인 민음사는 올해 김수영문학상은 박참새 시인의 건축51편에게 돌아갔다고 1113일 밝혔다.

 

박참새 시인은 1995년 부산출생으로 부일외고와 건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가상실재서점 모이(moi)’의 북 큐레이터이자 팟캐스트 참새책책의 진행자, 여성 창작자와의 대담을 엮은 책 출발선 뒤의 초조함의 저자, 시와 산문을 발행하는 독립 창작자 등 책과 관련한 여러 일을 하고 있다.

 

심사위원단은 건축51편에 관해 "활화산처럼 넘쳐흐르는 에너지와 과감함으로 처음부터 이목을 끌었다"풍부한 문학적 레퍼런스를 토대로 한 과감한 발상과 다채로운 화자, 우회나 주저함 없이 끝까지 시적 주제를 파고드는 정통적인 힘은 비할 데 없이 압도적인 장점이었다고 설명했다.

 

, “시 쓰기에 대한 집념과 이를 중심으로 한 주제 의식, 그마저도 넘어서고자 하는 시적 시도들은 '김수영이라는 이름의 상에 값하는 당선자'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박참새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누가 시 왜 쓰냐고 하면은, 내 깡패 되려고 그렇소,라고 답하겠다""내 글은 나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해석되고 통용되고 전이될 테지만 단 하나의 진실만을 향해 간다면, 그런다면 그 이상의 다행은 없으리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수상 시집은 연내 출간될 예정이다. 12월 초 발행되는 문학잡지 릿터에서 수상작의 대표 시 4편이 우선 공개된다. 이 블로그는 그 때 다시 박참새 시인의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 수상소감

/박참새

and I fiddled with the poem.

나는 시를 조물락거리게 됐다.

 

부코스키의 말이다. 요즘 다시 부코스키를 읽는다. 깡패 새끼. 좋았겠다. 그의 깡패스러운 면을 닮고 싶다. 시에 직면하는, 투우 같다. 정말 그렇게 생기기도 했고……. 인쇄 맡긴 시집이 오늘 아침 일찍 도착해서 정신이 번쩍 뜨였다. 오후께나 올 줄 알았는데. 이번엔 기도를 하면서 중얼거렸다. 나의 출구는 이것뿐이라고. 제발. 제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땀이 뻘뻘 나는 날씨에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를 타고. 촉촉해진 내 등에 얹힌 원고 더미들 내 시들. 생각하면 실실 웃음이 나는가, 싶기도 해서 조금 웃어도 보고. 내게 남은 시간은 딱 두 달. 간절한 마음이 더 진해진다. 이 책을 만들다가 정말 시인이 되고 싶다. (202394일 투고 직후의 일기)

 

시라는 말이, 언어라는 족쇄가

 

내 안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놓아주지 않고 평생 놀려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딴에는 침을 뱉는다고 생각했지만 침을 뱉기는커녕 튀기지도 못한 거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인제야 해 봅니다. 더 끓이고 끓일걸.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다 뱉어 놓은 말들의 침이고, 그것에 찔리거나 말거나 할 것이고, 그게 나일 수도 내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는 더 감질나게 말맛을 굴려 보다가 이리에다 저리에다 또 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헛소리다! 헛소리다! 이렇게 외치며 한 줄 한 줄 쌓아 가다 보면 언제나 내 안에서는 헛스러운 참말이 되고, 시이면서 시가 아닌 것이 만들어지고, 나는 그렇게 간헐적으로 숨통을 트면서 시인 흉내를 내고 싶어 했습니다. 막상 이 지경이 되니 그게 무엇인가 싶고 알아서도 안 될 것만 같습니다.

 

나 사실은 깡패로 살고 싶습니다. 실상은 안 그러하니 더더욱 건달이고 싶습니다. 규율과 규칙이 지겹습니다. 매일 아침 눈뜨면 새로이 정의된 윤리를 이해하느라 진이 다 빠집니다. 나는 그냥 혼자 썩어 가며 허락된 범위의 구역에서 나 혼자 깡패이고 싶습니다. …… 시 자체가 깡패스러운 면이 있지요. 아무튼지 간에 이제는 누가 시 왜 쓰냐고 하면은, 내 깡패 되려고 그렇소,라고 답하면 되겠습니다. 그 말 들을 표정 상상하니 통쾌하군요. 제 식대로 침을 뱉어 보자면 그렇습니다.

 

이제 내 글은 나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해석되고 통용되고 전이될 테지만 나는 전혀 상관 않고 지금껏 그래 왔듯이, 내가 나의 눈을 가리면서, 내가 쓰는 것이 당최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규정할 필요도 정리할 필요도, 받아들여질 필요는 더더욱 없으리라 다짐하고 또 외치면서 단 하나의 진실만을 향해 간다면, 그런다면 그 이상의 다행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나더러 쓰지 않으면 죽을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내심 기분 좋았다. 내 시를 읽는 동안 같이 죽고 싶단 마음이 차올랐다고 했을 때 이미 나는 약간 죽어 있었다. 마음에도 성기가 있다면 심장일 텐데, 언제나 그것을 꽉 쥐고서는 나는 절대로 흥분 같은 건 안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저 성실하자 성실하자 되뇌었지만 가끔은 쾌감에 절어서 미쳐 버릴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새로운 언어의 작용을 통해서 자유를 행사하라. 그렇지 않으면 시의 양심을 이행하지 않고 배반하는 것이리라. 김수영의 말입니다. 흰 종이라는 영토에서 구토가 일 것만 같을 때, 시의 독자는 시인이 아니고서야 될 수 없음을 다시금 외면서, 당신 역시도 시인일 것이라는 의심을 믿으면서, 내가 사랑한 죽은 사람들을 반드시 기억해 가면서, 그렇게 끝까지 끝까지, 끝장을 볼 때까지, 약간 알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모르는 채로, 나도 당신도 모르는 영원한 과오를 무책임하게 저지르면서, 영원히 미완인 채로 완성해 나가며, 완전한 침묵을 향해, 시를 조물락거릴 겁니다. 세상이 배반한 곳에서 영원히 거주하는 게걸스런 깡패처럼, 내가 사랑한 죽은 사람들, 죽은 당신을 평생 잊지 않고, 이렇게 잘만 써먹으면서, 우리 종이의 영혼에 새겨 가면서, 그렇게 제멋대로 쓰고 살렵니다.

출처 : 2023년 제42<김수영문학상> 수상자 발표문, 민음사,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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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늦게 도착했다고해서 실패한 인생도 아니다.
활화산처럼 넘쳐흐르는 에너지 박참새의 시.
누가 시 왜 쓰냐고 하면은 내 강패 되려고 그렇소. 박참새의 소감.
박참새 작가. 사진은 박참새 작가 소장 사진.
박참새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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