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윤동주 명시 새로운 길

무명시인M 2021. 2. 1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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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명시 새로운 길.민들레가 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윤동주 명시 새로운 길.한국인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영원한 청년시인 윤동주의 대학 1학년 때의 작품.그의 시와 길은 시작된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출처: 윤동주,새로운 길, 별 헤는 밤, 교보문고,2017>

🍎 해설(사진 다큐)

🌹 초점 해설

 

윤동주는 칠흑같은 일제 식민지 상황에서도 문학을 통해 시대와 삶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이 초기작 새로운 길도 윤동주의 자기 성찰과 신념을 암시하고 있다.항상 걷는 길이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언제나 뭔가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시인의 신념과 결의가 배어 있다.

 

🌹 연희전문(현 연세대) Freshman 시절

운동주 연희전문(현 연세대)1학년 여름방학 하기아동성경학교 선생 자원봉사자: 서 있는 뒷줄 왼쪽 두 번째가 윤동주.

사진: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

시인이 1938년  연희전문 1학년 때, 연희전문 교지에 이 '새로운 길'을 발표한 직후(여름방학 때)의 사진.

당시 윤동주는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내에 있던 협성교회를 다녔다. 고 정병욱 교수 말에 의하면 윤동주는 협성교회에 다니던 이화여전 여학생들을 묵묵히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줍음이 많았던 윤동주는 여학생에게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욘사마(배용준)보다 윤사마(윤동주)가 더 잘생겼다는 여성 팬이 많다고 한다.다정다감했던 훈남 윤동주는 연애 한 번 못해보고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 새로운 길을 집필했던 윤동주의 책상

운동주의 책상

사진: 연세대 윤동주 기념관

전해 내려오는 구전을 중심으로 연세대 윤동주 기념관 측에서 재현해 놓은 연희전문 기숙사 안의 윤동주의 책상. 자유 관람 가능.

 

🌹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

1943년 6월,교토에서 대학 친구들과의 송별회 사진.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현대문학지

이 사진이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사진. 이 사진 촬영 직후 윤동주는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간다.이 사진을 보관해 오던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 동급생 키타지마 마리코 여사에 의하면 그 날 윤동주는 송별회 자리에서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라고 간청하자 아리랑을 불렀다고 회고한다.

 

🌹 새로운 길은 끝났는가?

윤동주가 언제나 걷던 연희전문 숲길. 언제나 새로운 길. 연세대는 이 길을 이양하 교수의 신록예찬 숲길이라고 지금도 잘 보존하고 있다.

사진: 연세대 공식 블로그

1945년 2월, 조국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윤동주 시인이 일본 후코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옥사한 것은 실로 가슴 사무친 일이었다.

윤동주의 새로운 길은 여기에서 마침표를 찍었는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했던"윤동주를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그는 아직도 가장 아름다운 시인으로 우리 마음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윤동주 시인이 그토록 염원했던 조국의 번영을 위해 나의 길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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