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좋은 시 비스듬히. 비스듬히라는 부사를 제목으로 삼은 것부터 특이하다.
비스듬히
/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출처: 정현종,비스듬히, 비스듬히 시인의 시들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문학판,2020>
🍎 해설
🌹초점 해설
우선 부사인 비스듬히를 제목으로 삼은 게 특이하다. 이 비스듬히'란 부사가 '사람 인(人)'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 인(人) 한자를 보면 두 획이 비스듬히 서로에 기대고 있다. 표의문자엔 나름대로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숙명적 속성을 압축하고 있다.
빗금 속에는 수직과 수평이 다 들어 있듯이, '비스듬히'는 많은 차원을 갖고 있다. 이 시는 이 세상 만물의 상호의존성을 일깨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연대 의식이 절실한 때다. 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마스크 착용, 기침 예절,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잘 준수해야 한다. 나무 뿐만 아니라 우리는 숙명적으로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하는 인간이다. 이 시는 이상하게도 코로나19 시대의 좌우명을 들려주는 듯한 메시지도 주고 있다.그러기에 이 시를 이 블로그에 지금 올리는 것도 타이밍이 좋다.
🌹시인의 자작시 해설
"우선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거나 평가할 때, 말하자면 자기의 힘을 행사할 때, 어떤 수줍음 속에서 그렇게 한다면 비스듬히 행사하는 게 될 터이다.
비스듬하다는 건 마음의 넓이와 높이를 아울러 갖고 있는 움직임이며, 모든 좋은 관계나 좋은 결정은 비스듬하지 않을까. 사실 '기대기'는 다 비스듬하다. 그게 한마디 말이든 무슨 물건이든 또는 사람이든 기대지 않고는 삶이 진행되지 않는다.“
❄출처: 조선일보,2020.4.30.정현종 시선집 출간 인터뷰.
🌹시인이 젊은 이들에게 드리는 부탁 말씀 한 가지
시인은 "사람이 사물에 대한 성찰 없이 살 수가 있겠나"라며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보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나는 그것이야말로 걷기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다고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면,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출처: 위와 같음.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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