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좋은 시 산문에 기대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붙박이로 수록되어 있는 유명한 시다.
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
❄출처 : 송수권 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 문학사상사, 1980.
🍎 해설
*산문(山門)에 기대어: 산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산문에 기대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는 생사의 갈림을 목도하는 순간의 고뇌.
*그리매: 그림자
*즈문: 천(1,000). 많은
*못물: 못에 고인 물
이 시는 꽤 유명한 작품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붙박이로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불고적인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죽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죽은 누이의 환생에 대한 강한 소망을 드러낸다.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등의 표현은 환생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시인은 죽은 누이의 환생을 믿기 때문에 슬픔에 빠지지만 않고 그것을 견디고자 한다.
이 작품은 개인의 슬픔이나 한을 인간 보편의 근원적인 슬픔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송수권 시인의 시는 무력하고 자조적인 한(恨)의 정서가 아니라 한 속에 내재한 은근하고 무게 있는 남성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으며, 남도의 토속어가 가진 특유의 맛과 멋을 무리없이 살리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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