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정지용 좋은 시 춘설

무명시인M 2022. 3.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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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좋은 시 춘설. Source: www. pexels. com

정지용 좋은 시 춘설. 하얀 눈 속에 움트는 봄의 생명력.

춘설(春雪)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멧부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숭거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워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

 

출처 : 정지용 시집, 정지용 전집 1,민음사, 2016.

 

🍎 해설

*옹숭그리고: 몸을 몹시 움츠려 작게하고

*옴짓 아니 기던: 움직이지 않던

*핫옷: 안에 솜을 두어 지은 겨울옷

 

하얀 눈 속에 움트는 봄의 생명력을 느끼고 차가운 눈 속에서 더 선명하게 봄을 느껴보고 싶어한다.

 

시의 첫 구절인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다란 표현은 감동적이다. 밤새 봄눈 내린 줄도 모르고 단잠 잔 뒤 깨어나 문을 열자 눈 덮인 산이 이마에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서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눈은 곧 녹아 없어질 것이기에 아쉽고, 한 해의 겨울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겠기에 슬프다. 시인은 "꽃이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로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꽃샘 추위 뒤에 오는 새로운 봄을 더 선명하게 맞이하고 싶은 서정이 있다.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은 아름다운 서정시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의 해설

이제 정지용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일제 강점기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이라고 시작되는 시 고향이 채동선 선생에 의해 작곡되어 해방 공간에서 널리 애창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그동안 납·월북 여부가 불분명한 가운데 노랫말이 "그리워 그리워 돌아와도 그리던 내님은 아니뵈네"로 개사될 수밖에 없었던 분단 비극의 한 상징이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1988년 해금되어 다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되는 시 향수가 작곡되어 국민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마침내 연전에 제3차 남북이산가족 만남에는 북에 사는 아들 그의 3남 구인 씨와 남의 장남 구관 씨가 만나 이산의 슬픔과 아버지 잃은 슬픔을 함께 눈물로 달래기도 했지요.

 

그러나 역사는 아픔과 슬픔 속에 흘러가고, 또 사람도 세월 속에 사라져 가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영원히 생명을 유지해 가는 것 아닙니까? 해마다 봄이 올 무렵이면 바로 이 시 춘설(春雪)이 떠오르기 마련이지요.

 

"문 열자 선뜻 / 먼 산이 이마에 차라"로 시작되는 이 시는 겨울 속의 봄 이야기 또는 봄 속의 겨울 이야기라고 할까요. 요즘 환절기의 정서를 참 잘 묘사해 준 작품입니다. 물러가기 싫어서 겨울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차가운 눈발을 흩뿌리면서 앙탈하는 모습이지요.

 

그렇지만 어느새 3, 우리 모두 "어름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 옹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 옴짓 아니 기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과 같이 새롭게 봄을 시작해야지요. 겨울 추위가 매섭고 눈이 많으면 새봄의 꽃도 화사하고 향기 또한 짙은 법, 우리 모두 새봄을 새롭고 힘차게 시작해야 하겠지요?

출처 : 김재홍 편저, 작은 들꽃이 보고 싶을 때, 문학수첩,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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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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