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명시 행복. 연애편지에 꼭 베껴쓰던 명시다.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출처 : 유치환, 행복,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중앙출판공사, 1989.
🍎 해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종이 손편지 연애편지 시절에는 연애편지마다 이 두 구절 중 하나를 즐겨 베껴 쓰곤 했다. 여고생들은 플라스틱 코팅 책받침 시로 이 시를 제일 좋아했다. 그 만큼 이 시는 유명한 사랑시다.
남자나 여자나 사랑을 할 때, 상대의 사랑과 나의 사랑을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예외없이 내가 사랑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려는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인이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있다는 명제는 어쩌면 인류의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첨언한다면, 이 시에서 나오는 우체국 창문 앞에 가서 시인은 20년 동안 거의 매일 편지 한 통씩을 써서 애인에게 보냈다고 한다. 무려 5,000통이었다. 이 시도 그런 연애편지 중의 하나다. 상대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여인이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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