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

윤선도 명시 오우가

무명시인M 2021. 7. 1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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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명시 오우가. Photo Source: www. pixabay.com

윤선도 명시 오우가. 이 블로그는 윤선도 시인의 오우가를 '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카테고리)'로 선정하였다.

오우가

/윤선도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많노매라

깨끗하고도 그칠 이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에 광명이 너 만한 것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출처 : 윤선도, 오우가, 산중신곡(1642), 고산유고, 1791(정조 15) 간행.

 

🍎 해설

윤선도 시인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시로 살려낸 개척자이다. 송강 정철과 함께 조선시대의 시조, 시가 2대 거목으로 평가된다.

시인은 공직자였으나 조선조 시대의 고질적인 당파싸움에서 밀려 일생의 대부분을 귀양살이로 보냈다.

이 시도 그런 정치적 귀양살이에서 잠시 풀려났을 때인 56세 때 창작되었다.

시인은 자신에게 좌절과 환멸을 안겨 준 참담한 정치 현실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런 정치 현실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고 나름대로의 자신의 정치적 인생관적 가치관을 이 시에서 표현한다.

 

그가 추구한 norm, 즉 규범은 부단, 불변, 불굴, 불욕, 불언 등이었다. 시인은 부단=, 불변=, 불굴=, 불욕=대나무, 불언=달을 이 연시조로 형상화 하였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시어와 물흐르듯 흘러가는 시적 운률이 있다.

 

🌹시인 윤선도

윤선도(尹善道 1587~1671, 향년 85)는 조선조 선조, 광해, 인조, 효종, 현종 시대의 공직자이자 시인이다. 작가, 한의학 저서가 있는 한의사, 성리학자, 풍수지리가이다.

조선조 당파싸움에서 비주류였다. 강직한 성품과 타협과 아부를 모르는 비판정신 때문에 일생의 대부분을 귀양살이로 보냈다. 향년 85세인데 81세 때에야 귀양이 풀렸다. 장원급제를 했는데에도 평생 찬밥만 먹다가 사후에야 그에게 이조판서(장관) 관직이 추서되었다.

 

귀양살이 중에서도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시조 75수를 창작한 것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하겠다.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 귀양살이 20년에 여유당전서 등 불후의 명저를 저술한 것을 생각나게 한다.

탕평책을 쓴 정조의 특명에 의해 윤선도의 시조가 고산(孤山)유고로 간행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행운이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Photo Source: www.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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