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서커스의 여자. 인간은 서커스의 여자 곡예사.
서커스의 여자
/한강
붉고 긴 천으로
벗은 몸을 묶고
허공에 매달린 여자를 보았다
무덤의 천장에는 시퍼런 별들
순장된 우리는 눈을 빛내고
활짝
네 몸에 감긴 천으로 풀어낼 때마다
툭
툭
목숨 떨어지는 소리
걱정 마
나는 아홉개의 목숨을 가졌어
열아홉 개, 아흔아홉 개인지도 몰라
아흔여덟 번 죽었다가 다시 눈 뜰 때
태아처럼 곱은 허릴 뒤로 젖히고
한번 더 날렵하게 떨어져주지
팽팽히 더 뻗어야지,
붉은 끈이 감긴 다리를
분질러진 발목을
마저 허공에 눕혀야지
눈을 가린 광대가 던져 올리는
색색의 공들처럼
점점 빨라지거나,
영원히 놓치거나
툭
툭
어디서 장사 지내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들리면 마중 나가야지
더,
좀더 아래로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韓江 작가의 詩 우수작품이다.
이 시는 서커스단 여자의 아슬아슬한 공중곡예를 묘사하는 듯하지만,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강인함과 절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붉고 긴 천은 죽음을 상징하는 매개체이자, 삶을 연장시키는 도구다. 긴 천은 끝없이 반복되는 삶이다. 아흔아홉 개의 목숨은 인간의 불멸에 대한 욕망이고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다.
툭 툭 목숨 떨어지는 소리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정한지 보여준다. 분질러진 발목은 극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다. 눈을 가린 광대란 광대는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자신은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결국 이 시는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강인함과 절망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붉고 긴 천으로
벗은 몸을 묶고
허공에 매달린 여자를 보았다
활짝
네 몸에 감긴 천으로 풀어낼 때마다
툭
툭
목숨 떨어지는 소리
아흔여덟 번 죽었다가 다시 눈 뜰 때
팽팽히 더 뻗어야지,
붉은 끈이 감긴 다리를
분질러진 발목을
마저 허공에 눕혀야지
눈을 가린 광대가 던져 올리는
색색의 공들처럼
툭
툭
어디서 장사 지내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들리면 마중 나가야지
더,
좀더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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