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한강 서커스의 여자

무명시인M 2024. 12. 19. 03:37
728x90
반응형

한강 서커스의 여자.

한강 서커스의 여자. 인간은 서커스의 여자 곡예사.

서커스의 여자

/한강

붉고 긴 천으로

벗은 몸을 묶고

허공에 매달린 여자를 보았다

 

무덤의 천장에는 시퍼런 별들

순장된 우리는 눈을 빛내고

활짝

네 몸에 감긴 천으로 풀어낼 때마다

목숨 떨어지는 소리

 

걱정 마

 

나는 아홉개의 목숨을 가졌어

열아홉 개, 아흔아홉 개인지도 몰라

 

아흔여덟 번 죽었다가 다시 눈 뜰 때

 

태아처럼 곱은 허릴 뒤로 젖히고

한번 더 날렵하게 떨어져주지

 

팽팽히 더 뻗어야지,

붉은 끈이 감긴 다리를

 

분질러진 발목을

마저 허공에 눕혀야지

 

눈을 가린 광대가 던져 올리는

색색의 공들처럼

점점 빨라지거나,

영원히 놓치거나

 

어디서 장사 지내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들리면 마중 나가야지

더,

좀더 아래로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韓江 작가의 우수작품이다.

이 시는 서커스단 여자의 아슬아슬한 공중곡예를 묘사하는 듯하지만,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강인함과 절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붉고 긴 천은 죽음을 상징하는 매개체이자, 삶을 연장시키는 도구다. 긴 천은 끝없이 반복되는 삶이다. 아흔아홉 개의 목숨은 인간의 불멸에 대한 욕망이고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다.

 

툭 툭 목숨 떨어지는 소리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정한지 보여준다. 분질러진 발목은 극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다. 눈을 가린 광대란 광대는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자신은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결국 이 시는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강인함과 절망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붉고 긴 천으로

벗은 몸을 묶고

허공에 매달린 여자를 보았다

 

활짝

네 몸에 감긴 천으로 풀어낼 때마다

목숨 떨어지는 소리

 

아흔여덟 번 죽었다가 다시 눈 뜰 때

 

팽팽히 더 뻗어야지,

붉은 끈이 감긴 다리를

 

분질러진 발목을

마저 허공에 눕혀야지

 

눈을 가린 광대가 던져 올리는

색색의 공들처럼

 

어디서 장사 지내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들리면 마중 나가야지

더,

좀더 아래로

붉고 긴 천으로 벗은 몸을 묶고 허공에 매달린 여자를 보았다
툭 툭 목숨 떨어지는 소리
분질러진 발목을 마저 허공에 늅혀야지
들리면 마중 나가야지 더 좀더 아래로

반응형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정권 양파  (0) 2024.12.21
나태주 개울 길을 따라  (2) 2024.12.20
정병근 안부  (0) 2024.12.17
안도현 재테크  (6) 2024.12.16
복효근 우산이 좁아서  (0) 202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