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손택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무명시인M 2024. 12. 3.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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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손택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치열한 삶도 많이 있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손택수

명절 앞날 세탁소에서 양복을 들고 왔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 양복 주름이 모두
아낙에게로 옮겨간 것 같다
범일동 산비탈 골목 끝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난다
겨울 저녁 세탁, 세탁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
그의 집엔 주름 문이 있었고
아코디언처럼 문을 접었다 펴면
타향살이 적막한 노래가 가끔씩 흘러나왔다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
세탁소 아낙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이 접혔다 펴지며 아련한 소리를 낸다 🍒
 
❄출처 : 손택수 시집, 『나무의 수사학』, 실천문학사, 2010.
 

🍎 해설

따뜻한 시다. 세탁소 다리미는 명절 옷 주름을 편다. 고향 가는 기차는 세상의 주름을 편다. 그러나 명절 옷을 다려준 세탁소 아낙의 주름은 펴졌을까?
 
하얀 스팀 입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의 주름은 펴졌을까?
 
명절날 들뜬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갈 때,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치열한 삶의 그런 집도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보자.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생각도 해보자.
 

명절 앞날 세탁소에서 양복을 들고 왔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범일동 산비탈 골목 끝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난다
겨울 저녁 세탁, 세탁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
 
세탁소 아낙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이 접혔다 펴지며 아련한 소리를 낸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 양복 주름이 모두 아낙에게로 옮겨간 것 같다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
세탁소 아낙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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