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수라. 일제 강점기 하 가족공동체 해체의 비극.
수라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잰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 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출처 : 백석 지음 이동순 편, 『백석 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8.
🍎 해설
*수라(修羅): 제목인 수라는 불교에서 중생이 자신의 업보에 따라 윤회하게 되는 여섯 세계 중 하나인 아수라도를 이르는 말로, 흔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의 끔찍한 세계를 의미한다. 아수라장과 비슷한 뜻.
일제 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붕괴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표현한 시다.
이 시는 가족 공동체의 안락함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방바닥에 떨어진 거미 가족을 의인화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어느 추운 밤 방바닥에 떨어진 새끼 거미 한 마리를 무심결에 쓸어 담아서 방 밖에 내다 버린다. 그런데 어느 샌가 새끼 거미가 쓸려 나간 자리에 어미 거미가 와 있다.
시인은 그 거미를 다시 쓸어 내 버리고 추운 밖이지만 새끼가 있는 곳이니까 잘 살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어미 거미를 내 보내자 막 알에서 깨어난 듯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가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이 새끼 거미는 너무 작아서 손등에도 기어 오르지도 못할 정도여서 시인은 그것이 자신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서러워한다.
시인은 부드러운 종이로 새끼 거미를 받아 밖으로 버리며 가족을 다시 만나 함께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은 자신 때문에 해체된 거미의 가족공동체의 비극을 서러워하며 회복을 모색하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 한다. 윤동주 시인의 시대적 아픔에 대한 자책감과 유사하다.
어니잰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은상 오륙도 (0) | 2024.04.05 |
---|---|
김영랑 언덕에 누워 (0) | 2024.04.02 |
오규원 내가 꽃으로 핀다면 (0) | 2024.03.30 |
전봉건 피아노 (2) | 2024.03.28 |
신석정 산산산 (0) | 2024.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