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거룩한 식사. 그 어떤 것도 밥 다음이다.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출처 :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 해설
춘궁기라는 절대빈곤의 시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식은 밥을 두고 동생과 숟갈 싸움을 하던 배고픔의 기억이 갑자기 북받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였다.
나이 든 사람이 혼자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가난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 올리고 목이 메인다. 비록 라면, 찬밥, 국밥 같은 하찮은 음식이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거룩한 식사이기 때문이다. 풀어진 머리, 등 돌리고 먹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눈물겨움과 연민이 나타난 시이다.
결국 세상에 대한 연민과 애정 그리고 긍휼의 정신이 가득 한 시다. 거룩한 밥 앞에서 목이 메인다. 그 어떤 것도 밥 다음이라서. 나아가 밥을 먹는 일처럼 사소한 일상이 실은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를 표현한 시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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