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송찬호 가을

무명시인M 2023. 7. 2.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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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가을.

송찬호 가을. 2008년 미당문학상 수상작품. 우수 서정시.

가을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 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이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

 

출처 : 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

 

🍎 해설

*산비알: 산비탈의 충청도 방언.

*묵정밭: 오래 내버려 두어 거칠어진 쑥대밭.

이 시는 2008년 제8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시골 청정지역의 생생한 숨결과 역동적인 사물의 움직임이 원형 그대로 포착되었다. 콩과 콩밭만으로 그려낸 가을 농촌 정경이다. 장끼며, 노루며, 멧돼지, 콩새 등이 등장한다. 질박한 가운데서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감사의 무릎을 꿇는 노인 농부의 모습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내년이면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는 외딴 콩밭이 처한 현실과, 황두 두말가웃의 소출에 빙그레 웃는 소박한 가난.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고 하는 인생 무상.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고라며, 콩새에게 남은 콩을 어서 주워가라고 재촉하는, 무위와 무욕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복고적 전통 감각과 시적 언어의 미학이 돋보이는 우수작품이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 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이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놀란 장끼가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올 소출이 황두 두말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콩새야, 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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