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

정지용 향수

무명시인M 2023. 3. 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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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향수.

정지용 향수.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 박인수 테너의 노래로도 유명하다.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출처 : 1927년 3월 『조선지광(朝鮮之光)』 65호에 발표되었고, 제1시집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 시문학사, 1935.
 

🍎 해설

정지용 시인이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이다. 우리말의 풍부한 구사,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고향작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 작품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과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시는 일제강점기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 상실의 비애감을 시로 표현한 작품이다. 향수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상실된 조국 낙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평범한 한 농촌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얼룩배기 황소가 울음을 우는 한국의 농촌 풍경이다.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는 말을 달리는 듯하고,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함추름 휘적시던 곳'은 흩어져 있는 듯하다. 실개천을 '옛이야기 지줄대는' 소리로, 황소를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으로, 아버지를 '엷은 졸음'으로 표현한 솜씨가 음악적이다.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아버지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누이와 사철 발벗은 아내가 집안에 있고 집밖으로는 넓은 벌과 실개천이, 파란 하늘과 풀섶 이슬이, 석근 별과 서리 까마귀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미 마음의 고향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를 후렴처럼 노래한다.
 
아름다운 명시다.
 

🌹 향수 노래듣기

이동원과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보다 박인수 테너의 향수라는 노래가 시보다 더 유명하다.
 
지난 2023. 2. 28, 박인수 테너는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박인수 테너는 1983년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부임한 뒤에 클래식 음악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적인 행보에 나서 '향수'를 발표했고 이 노래가 큰 인기를 끌면서 '국민 테너'로 불렸다.
 
이 곡은 클래식과 가요 간의 장벽이 높았던 80년대 말의 한국 음악계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박인수는 당시 클래식계에서 배척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 곡은 그의 이름을 대중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됐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박인수 테너는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에 위배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파문의 중심에 섰던 것"이라며 "'향수'를 부르고 나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고, 사람들의 인생을 다양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서는 가장 유명한 이동원과 박인수가 함께 부른 향수를 감상하기로 한다.
https://youtu.be/h8V3bm8ioGM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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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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