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완화삼. 박목월의 명시 나그네를 탄생하게 만든 역사적인 시.
완화삼
- 목월에게
/조지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출처 : 1946년 4월 [상아탑] 5호에 발표. 조지훈 시집, 『조지훈 선집』, 삼사재, 2020.
🍎 해설
완화삼(玩花衫): “꽃이 소매에 떨어지는 것을 즐겁게 감상한다”는 뜻. 시 본문에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라는 구절 등장.
이 시가 만들어진 데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1942년 봄. 박목월이 자신의 고향인 경주로 초면인 조지훈을 초대하였다. 그때 지훈은 스물둘, 목월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목월의 초대를 받은 지훈은 경주로 향했고, 그 곳에서 두 사람은 15일 동안 문학과 사상과 시국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때 경험했던 목월의 인정과 경주의 풍물이 기억에 자꾸만 남았던지 조지훈은 목월에게 보내는 편지로 자신을 달래다가 완화삼을 짓게 된다.
조지훈은 이렇게 회상한다.
“불국사 나무 그늘에서 나눈 찬 술에 취하여 떨리는 봄 옷을 외투로 덮어 주던 목월(木月)의 체온도 새로이 생각난다. 그리하여 나는 보름 동안을 경주에서 머물렀고, 옥산서원의 독락당에 눕기도 하였으며, <완화삼>이란 졸시를 목월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목월의 시 <나그네>는 이 <완화삼>에 화답하여 보내준 시이다. 붓을 꺾고 떠돌며 살던 5년간을 우리는 이렇게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하소연하며 해방을 맞았던 것이다.”
- 조지훈 : 박목월 시집 <산도화> 발문에서.
박목월은 조지훈의 이 완화삼 시에서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라는 대목을 따 답장으로 나그네라는 시를 지훈에게 써보내게 된다.
조지훈의 완화삼은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이다. 나중에 박목월의 명시 나그네에 의해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이 되었다. 조지훈의 이 명구절은 어둠에 묻혀 버렸고, 박목월의 나그네의 이 구절은 불후의 명시 명구절이 되었다.
이건 운명의 장난인가?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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