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정지용 유리창

무명시인M 2023. 2. 2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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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유리창.

정지용 유리창. 죽은 어린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작품.

유리창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

 

출처 : 19301조선지광89호에 발표되었고 1935년에 간행된 정지용시집(시문학사)에 수록. 정지용 시집, 유리창, 민음사, 1994.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

 

🍎 해설

이 시는 자식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다. 유리창에 감정을 투사하면서 슬프고 아름다운 비유들이 발생한다. 죽은 자식을 만나고 싶어 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유리창에 어리는 여러 이미지들을 통해 절제된 감각으로 표출된다.

 

이 시에서 정지용은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이미지를 통해 선명한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초기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형상화하였고 동시에 차가운 유리창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로 시작한다. 무언가 어른거리며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듯하다. 애틋한 몸짓으로 입김을 불며 를 만나고 싶어 한다.

 

입김을 지우고 유리창 밖을 바라보면 의 몸짓은 사라지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별이 보석처럼 박히는 순간 삶의 저편에 있는 의 존재는 가슴속으로 아프게 파고든다.

 

그렇지만 유리창 너머의 별이 가슴으로 다가와 보석처럼 박히는 한 순간처럼 황홀한 일치를 염원한다. 그러한 순간은 영원할 수 없기에 외로운것이며 순간적이나마 일치감을 맛볼 수 있기에 황홀한것이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모순어법이 인상적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와서야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는 직정적인 탄식을 한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비통한 심정을 고도로 절제하여 아름다운 이미지로 감각화시킨 명구절이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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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은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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