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박경리 눈먼 말

무명시인M 2022. 12. 30.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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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눈먼 말.

박경리 좋은 시 눈먼 말. 토지 박경리 작가의 자서전.

눈먼 말

/박경리

글 기둥 하나 잡고

내 반 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게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 🍒

 

출처 : 박경리 시집, 우리들의 시간, 마로니에북스, 2013.

 

🍎 해설

*연자매: 연자방아. 둥글고 넓적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세로로 세워서 이를 말이나 소 따위로 하여금 끌어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는 방아. 일명 연자방아라고도 한다.

 

옛날 시골에서 곡식을 찧는 연자방아를 돌릴 때 그 돌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사람이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이나 소가 이것을 끌게 했다.그 때 사람들은 힘든 말이나 소가 뛰쳐 나가지 못하도록 눈을 가렸다. 안 보이면 말이나 소들은 묵묵히 연자방아를 돌리면서 평생을 살았다.

 

박경리 작가는 국민 대하소설 토지43세부터 쓰기 시작해서 69세까지 썼다. 작가는 자화상 같은 이 시에서 글 기둥 하나 잡고/ 내 반 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라고 처연한 고백을 한다. 창작의 고통이 오죽했으면 평생 연자방아 돌리는 눈먼 말이 자신이라고 했을까. 가슴이 뭉클해 진다.

 

펜대를 잡고 반 평생을 살아 온 나, 이제껏 글기둥 하나 잡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눈먼 말처럼 치열하게 살아 온 적이 있었던가?

 

앞으로 나는 무슨 기둥을 붙들고 눈먼 말처럼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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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기둥 하나 잡고

내 반 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고삐를 풀어주지 않고 풀 수도 없었네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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