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명시 산산조각. 정호승 시인의 명시다.단순한 인생 교과서가 아니다. 감동의 울림과 탄력의 리듬이 있다.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출처: 정호승, 산산조각,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비채, 2020>
🍎 해설
이 시는 정호승 시인의 5대 명시중 하나다.
인생에서 불행이나 역경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산산조각 난 절망적 상황에서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라는 이 시는 절망의 늪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다시 살아남는 매직의 힘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시인이 서슴없이 부처님을 예찬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열린 마음, 열린 종교가 나라를 발전시킨다.
🌹 시인의 말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늘 위로하고 위안해 주는 단 한 편의 시로 ‘산산조각’을 꼽았다. 그는 “마지막 4행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를 가슴에 품고 오늘을 살고 있다. 많은 독자도 마지막 4행을 통해 자기 삶에 큰 힘과 위안을 얻는다고 생각한다.이 시대의 한 시인으로서 단 한 편의 시라도 다른 사람의 가슴에, 삶에 힘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지금은 네팔 남동부에 위치해 있는 룸비니동산은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이다. 그곳을 여행하며 기념으로 부처님 조각상을 하나 사왔다. 그런데 그만 바닥에 떨어뜨려 깨트리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서랍에 넣어둔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이려할 때 불쑥 부처님 말씀이 생각났고, 그 지점에서 이 시가 태어났다.”
❄출처: 2020년 11월, 시인의 언론 인터뷰.
🌹 스티브 잡스의 산산조각 체험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다.처음에는 산산조각,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애플에서 쫓겨 나오면서 성공에 대한 중압감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간이었다. 애플에서 쫓겨난 경험은 매우 쓴 약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환자*였던 내게는 정말로 필요한 약이었다."
*환자: 성공 집착증 환자/해설자의 추정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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