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좋은 시 까치밥. 펄벅 여사가 한국에 처음 왔다.감나무 까치밥을 봤다.저게 뭐지요?
까치밥
/송수권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
❄출처 : 송수권 시집, 『남도의 밤 식탁』,작가, 2012.
🍎 해설
*말쿠지: 물건을 걸어두기 위해 벽에 달아두는 나무 갈고리(사투리)
*죽: 옷, 신발 세는 단위(10벌)
장편소설 대지(大地)로 1938년 노벨 문학상을 탄 펄벅 여사가 1960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경주를 방문하던 그녀의 눈에 진기한 풍경이 발견됐다. 어느 날 그녀는 따지 않은 감이 감나무에 매달린 것을 보고는 동행하던 조선일보 이규태 기자에게 물었다.
"저 높이 있는 감은 따기 힘들어서 그냥 남긴 건가요?"
"아닙니다. 이건 까치밥이라고 합니다. 겨울 새들을 위해 남겨 둔 거지요."
그녀는 감동을 받아 1963년 <살아있는 갈대>라는 작품에서 한국의 까치밥 얘기를 썼다.
이 시는 까치밥이라는 소재를 통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정의 소중함과 그러한 배려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제2의 소재인 짚신도 까치밥과 같은 맥락이다. 할아버지가 자신이 신지 않을 짚신 몇 죽을 벽에 걸어 놓음으로써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까치밥과 짚신은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을 준다. 후손들에게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 된다.
시인은 지극히 교훈적인 이 소재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아/~말아라’라는 명령 부정문 형식의 반복을 통해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한편, 반복을 통해 시적 운율을 형성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다. 우리 선인들은 현명했다. 이 시는 누군가에게 까치밥이 돼줘야겠다는 헌신과 긍휼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최소한 까치밥을 남겨야 하겠다는 봉사의 정신을 생각나게 한다.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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