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송찬호 좋은 시 찔레꽃

무명시인M 2022. 7. 3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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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좋은 시 찔레꽃. Source: www. pexels. com

송찬호 좋은 시 찔레꽃.이 시는 한 남자의 인생 스토리다.

찔레꽃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삶이 그렇게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

 

출처 : 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 해설

이 시는 한 편의 소설이다. 또한 한 사람의 인생 스토리다.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고향 산 찔레나무 숲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다가 여자가 딴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여자는 눈물의 편지를 써 사기그릇에 담아 둘이 즐겨 놀던 산자락 찔레나무 숲 속에 묻어두고 남자에게 가보라고 한다.

 

결혼식 날, 남자는 눈썹을 밀고 그 눈썹이 다 자랄 때쯤에는 여자를 잊을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결혼식장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못잊어 눈물을 흘리며 신부가 입장할 때 남자는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사기그릇에 담긴 편지를 꺼냈다. 남자는 끝까지 읽지를 못하고 편지를 접어버린다.

 

세월이 흘렀다. 남자는 이십 수년을 타관에서 지냈다. 그렇게 여자를 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어쩌다 들른 고향 산자락의 찔레나무 앞에서 이십년 전 그 사기그릇을 발견한다. 사기그릇의 흰색은 희미했지만 마침 피어 있는 찔레꽃은 새하얗다. 벙어리처럼 하얗다. 눈썹도 없는 오월의 뱀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똬리를 틀고 울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잊히지 않는 찔레나무 한 그루씩은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산다. 찔레나무 아래 흰 사기그릇에 담긴 편지를 가끔 잊지 않는 사람은 인간성이 아름다운 사람인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청순한 사랑의 주인공인가?

 

🌹송찬호 시인

1959년 충청북도 보은 생.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1987우리 시대의 문학금호강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제13동서문학상, 19김수영문학상, 2008년 제8미당문학상, 2009년 제17대산문학상, 2010년 제3이상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

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지성사, 1994)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2000)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동시집

저녁별(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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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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