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도종환 좋은 시 가을 오후

무명시인M 2021. 11. 10.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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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좋은 시 가을 오후, Photo Source: www. pexels. com

도종환 좋은 시 가을 오후.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

가을 오후

/도종환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

 

출처 : 도종환, 가을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창비, 2011.

 

🍎 도종환 시인의 자작시 해설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 도종환 시인의 언론 기고문(2008)에서 발췌.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Photo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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