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좋은 시 시월. 서정성과 리듬이 뛰어난 가을시다.
시월
/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
❄출처 : 황동규, 시월(현대문학 1958년 2월호), 삼남에 내리는 눈, 민음사, 1975.
🍎 해설
이 시는 황동규 시인의 등단작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이 시를 현대문학지에 처음으로 추천하였다.(1958년 2월호, 황동규 시인은 당시 20세, 대학 2학년)
이 시의 서정성과 리듬은 뛰어나다.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모차르트 음악이다.
재회를 기다리는 이별이 더 쓸쓸하다. 그런 가을이 더 쓸쓸하다.
“창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시월이면 부르고 싶은 노래 듣기
바리톤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이 시와 잘 어울린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을에 듣고싶은 노래-10월의 어느 멋진날에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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