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백석 북방에서

무명시인M 2024. 3. 1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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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북방에서.

백석 북방에서. 찬란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회한과 자책.

북방에서

정현웅에게

/백석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잦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녯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녯 한울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 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출처 : 백석 지음 이동순 편, 백석 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8.

 

🍎 해설

*숭가리 : 송화강

* 오로촌: 오로촌족. 중국의 동북 지방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하나

* 쏠론(Solon) : 중국의 동북 지방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하나. 아무르강의 남방에 분포함.

* 돌비 : 돌로 된 비석

* 미치고 : 몹시 불고

* 보래구름 : 많이 흩어져 날리고 있는 작은

* 멧돌: 멧돼지.

* 앞대: 평북 내지 평안도를 벗어난 남쪽 지방. 황해도ㆍ강원도에서부터 제주도까지에 이르는 각지.

 

잃어버린 찬란한 우리 역사에대한 회한과 자성을 형상화하고 있는 명시다.

 

서두에서 옛날에 나는 떠났다고 나오는 곳은 예전 발해와 고구려를 건국하며 크게 번성했던 곳 지금의 한반도 위쪽 요동반도 만주 땅이다. '나는 떠났다'라고 말하며 그곳에 살았던 우리 민족이 떠났던 때를 떠올린다.

 

2연에서는 그 곳을 떠나며 슬퍼했던 이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3연에서는 이제 앞대, 즉 좁은 남쪽으로 떠나 축소된 영토에서도 소박하게 안위하며 만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밤에도 아침에도 핍박은 이어지지만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채

지나고 있다.

 

4연에서도 계속해서 국력은 약해지고 결국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예전 하늘의 땅 예전에 번성했던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옛땅에 돌아갔어도 먼 옛날 이별을 슬퍼해주던 동포들도 없고 정다운 우리 민족들도 이제는 없습니다. 바람과 물과 세월같이 예전의 영광은 사라졌고 예전의 동포들도 사라져 상실감을 가지게 한다. 북방에 가서 자신의 뿌리가 담긴 우리의 옛 영토에서 민족의 자취와 영광스러운 역사를 찾고자 하지만 이미 세월과 함께 지나가서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일제 강점기 상황과 연관시킨다. 과거 대륙을 호령하던 힘을 잃은 채 축소된 국토에서 안위하며 계속해서 침략받고 약해지다 결국 나라를 뺏긴 참담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예전의 영광이 지난 땅에서 위기를 극복하려 하지만 이미 예전의 영광은 세월과 함께 지나가 찾을 수 없게 된다. 시인은 실제로 만주 벌판을 헤매던 삶을 살았다. 역사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무력한 삶에 대한 자성과 슬픔을 형상화하고 있는 명시다. 윤동주 시인의 자성감 자책감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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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나는 나의 녯 한울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 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발해를...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 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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