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이 진 자리에 잎이 폈다고 너에게 쓰고 잎이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삶 풍화되었다 ☞해설 길거리를 오가는 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움츠린 어깨에 무력감, 두려움이 묵직하다. 꽃 피고 새 울면 코로나19가 물러가려나. 어서 봄이 오면 좋겠다. 꽃소식은 아직 없다. 푸른 잎은 더욱 감감하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자연 속에 내재된 생명의 힘을 믿고, 다가오는 새해 새봄을 희망차게 맞이하자, 이 시처럼. -2020년 세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