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리 짧은 시 죽 한 사발. 죽 한 사발이 되고 싶다.
죽 한 사발
/박규리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 🍒
❄출처 : 박규리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 창비, 2004.
🍎 해설
죽과 같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는 사람이다. 결국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다. 그런 참을성과 인고의 시간을 가져야만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스며들어 치유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이란 인고다.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래야만 죽 한 사발이 되어 그대 마음 깊은 그곳까지 스며들 수 있다.
🌹 박규리 시인
1995년 신경림 시인의 추천으로 『민족예술』에 「가구를 옮기다가」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한자 표기는 박규리(朴奎俚).
박규리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시인이다. 시인은 지난 1996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전북 고창에 있는 미소사(微笑寺)에서 공양주로 절 살림을 맡아오고 있다. 등단 직후부터 8년여 동안 속세를 등진 채 외롭게 시를 써온 것이다. 시인이 처음 절을 찾게 된 이유는 몸과 마음속 깊은 상처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경림 시인은 박규리의 시에 대해 “새파란 칼날의 매서움과 봄 햇살의 부드러움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너무 많은 말을 하지도 않고 너무 말에 인색하지 않은 시문법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 : 박규리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 창비, 2004, 출판사의 소개문에서.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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