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밥해주러 간다. 모성의 거룩함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밥해주러 간다
/유안진
적신호로 바뀐 건널목을 허둥지둥 건너는 할머니
섰던 차량들 빵빵대며 지나가고
놀라 넘어진 할머니에게
성급한 하나가 목청껏 야단친다
나도 시방 중요한 일 땜에 급한 거여
주저앉은 채 당당한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뭔 중요한 일 있느냐는 더 큰 목청에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여?
구경꾼들 표정 엄숙해진다. 🍒
❄출처 : 유안진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 중앙북스, 2012.
🍎 해설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 그것은 가장 원시적인 굳센 힘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모성의 사랑이 있을 뿐이다.
'자식 밥 먹이는 일'이 모든 일의 우선이다.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여?’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말도 찾기어렵다. 자기 자식을 남 앞에서는 못나고 부족한 놈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성의 하나다. '취직 못한 막내 눔'에 대한 애정은 더 각별하고 더 애틋하다.
살다 보면 어머니의 사랑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못나고 부족한 눔, 필자인 나부터. 삶의 이치에 관한 순리적인 깨달음이 묻어있는 시이다.
나도 시방 중요한 일 땜에 급한 거여
주저앉은 채 당당한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뭔 중요한 일 있느냐는 더 큰 목청에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여?
구경꾼들 표정 엄숙해진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정주 광화문 (7) | 2023.08.22 |
---|---|
송경동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0) | 2023.08.15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강 (0) | 2023.08.10 |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0) | 2023.08.08 |
이해인 사랑의 사계절 (6) | 2023.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