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함민복 짧은 시 반성

무명시인M 2022. 1. 12.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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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짧은 시 반성. Source: www. pexels. com

함민복 짧은 시 반성.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미리 반성부터 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반성

/함민복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

 

출처 : 함민복,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문학동네. 2019.

 

🍎 해설

사람들은 누구나 결과를 보고 나서 비로소 반성을 한다. 어떤 일을 시도하기 전에 미리 반성부터 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이 이러한데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얼마나 진지할까.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하는 시다.

 

🌹 이안 시인의 해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1학년 120여명을 두 시간 동안 만나는 자리였다. 쉬는 시간에 여자아이 한 명이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 이야기 들으며 좋았어요.” 1학년에게 이런 칭찬을 다 듣다니, 기분이 좋아 슝 날아갈 것 같았다. 아이에게 조금 더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정말?” 하고 되물었다. “, 선생님 이야기 들으면서 졸았어요.” ‘았어요가 아니라 았어요였던 것!

 

그런데 왠지 통쾌했다. 이 아이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했는데 졸아서 미안하다고. 미안(未安)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는 뜻이다. 편치 못함, 미안이 없으면 윤리 감각이 생겨날 수 없다. 불편한 것이 편한 것보다 윤리적인 건 그 때문이다.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는데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은 어디서 온 마음일까. 강아지를 이뻐하는 내 마음도 같이 씻어내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이 거짓인 것만 같아서. 늘 해오던 일이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 때가 있다. 문득 깨달은 것을 반성적 사유로, 실천으로 밀고 나갈 때 그것은 진심을 증명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생각은 말을 바꾸고, 말은 세계를 바꾼다. 사는 대로 생각하다가 생각하는 대로 살자고 결심한 순간, 우리는 의 일상에서 내일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

 

투명 유리 어항에 금붕어 두 마리를 기른 적 있다. 어느 날 금붕어들이 불편해 보이는 거다. 사생활이 숨김없이 노출되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까. 바깥에 나가 돌멩이 두 개를 주워 와 깨끗이 씻은 다음 어항에 기대어 놓아 주었다. 그러기 무섭게 금붕어 두 마리가 그 사이로 쏙 숨어 들어갔다. 말 못하는 마음이 애타게 숨을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돌멩이 하나만 넣어 주면 안 될까요?// 나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요// 돌멩이 뒤에 숨어,// 아무에게도 나를/ 보여 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이안, ‘금붕어’) ‘혼자 있고 싶은 날’, ‘아무에게도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날’,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날은 언제였는지, 어떤 날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그런 날은 식구들이 어떻게 해주면 좋은지 이야기해 보자. 팻말을 만들어도 좋다. 꼭꼭 숨고 싶은 날, 각자 자기 방문 앞에 걸어둘 수 있게.

 

2연에서 두 번 사용된 목적격 조사(/)는 특별하다. 2(“손을”)에서는 강조로, 3(“강아지를”)에서는 강아지를 받들어 감싸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강아지다음엔 이 없다. 그 전까진 내가 이고 강아지가 이었던 것이다. 조사 하나 있고 없음의 차이가 이렇듯 크다. 이 시가 아름다운 건, 이렇게 말하는 시인의 존재 때문이다.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이 이러한데 다른 것을 대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극진할까 싶어서다. 당신에게 더 좋은 것을 줄 때 나도 아름다워진다. “동생 코 풀어 주고/ 얼굴 씻어 줬는데// 이상하다// 내 손이 보들보들 깨끗해졌네”(박성우, ‘’) 하고 자기 손을 보며 놀라워하던 마음은 시간이 가도 지워지지 않고 선을 실천하는 굳은 바탕이 된다.

- 이안 시인, 언론 기고문(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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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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