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길 <전문 및 해설>. 시같은 수필이다. 문장이 매우 아름답고 내용이 서정적이다.
길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출처 : 김기림, 길, 김기림 지음 길, 깊은샘, 1992.
🍎 해설
*호져: 홀려로 추정됨.
모래둔: 모래둔덕으로 추정됨.
우선 이 작품은 시가 아니고 수필이다. 이 작품은 김기림 시인의 유일한 산문집 ‘바다와 육체’에 실린 글이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는 종종 시로 소개되고 있다. 문장이 워낙 아름답고 서정적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에 의해서 시로 분류되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문단에서도 큰 문제로 삼지는 않는다.
이 수필은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 스토리가 들어있는 작품이다.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이 첫 번째의 길이다. 그 다음은 조약돌 첫사랑의 길이 두 번째 길이다.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던 길이 세 번째 길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고 한 폭의 수채화다.
소년은 끝내는 마을 밖 버드나무 밑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들을 기다린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소년의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울고 있는 그 소년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어린 시절의 추억의 길을 담고 살아가고 있다.
그 추억의 길은 항용 감기를 만나 앓으면서 흔들리는 우리 삶의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추억의 길은 명화의 명장면처럼 가슴속에 남아서 기다림과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을 사무치게 만든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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