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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좋은 시 푸른곰팡이

무명시인M 2021. 6. 8.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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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좋은 시 푸른곰팡이. Photo Source: www. pixabay.com

이문재 좋은 시 푸른곰팡이. 종이 편지가 실종된지 오래다.

푸른곰팡이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출처 : 이문재, 푸른곰팡이, 이문재 시집 산책시편, 민음사, 1993.

 

🍎 해설

엣날에 우리들은 편지 한 통을 주고 받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움의 편지를 쓰는데 며칠 걸리고 그걸 휴지통에 버리고 다시 쓰기를 대여섯번, 가는데 또 며칠이 흘러간다. 이걸 두고 시인은 사나흘 혼자서 걸어가는,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를 발효의 시간이라고 이름 붙인다.

 

종이 편지가 실종된지 오래다. 요즈음은 문자 메시지나 카톡이다. 이메일도 안쓴다. 시인은 문명을 후퇴시키자는 말을 하는게 아니다. 그리움의 서정을 송두리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을 생각해 보자고 한다.

 

종이 편지를 주고받는 마음의 산책, 설렘과 그리움과 서운함이 어우러져 발효되는 효과가 마음의 삭막함이라는 염증을 막아주는 푸른곰팡이, 페니실린이 되어 왔다고 시인은 주장한다.

 

그리움과 발효의 시간 실종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우체통의 색깔이 빨간색이라는 시인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아름다운 시어다. 아파트 단지내에 아직은 남아 있는 빨간 우체통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시인의 마음처럼 발효의 시간 속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산책을 하고 싶어졌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Photo Source: www.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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