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효근 좋은 시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우리 사회에서 자기희생과 헌신의 정신은 점점 매말라 가고 있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 출처 : 복효근,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달아실 시선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달아실, 2017.
🍎 해설
서식하던 곳의 풀이 마르는 건기가 오면 아프리카 누우 떼들은 새로운 풀을 찾아 필사적인 이동을 한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넌다. 악어떼가 누우들이 뛰어들기를 기다린다. 그중 몇 마리의 누우들이 자진해서 악어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든다. 동료 누우 떼들의 무사 도강을 위한 숭고한 자기희생이다.
살아남은 누우들은 목숨을 빚졌으므로 혀로 거친 풀 뜯고 잠도 서서 잔다. 그러다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쪽으로 발을 옮길 것이다. 그렇게 죽어감으로써 자신의 종족을 살린다.
인류의 역사에도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민족을 위기에서 건져 낸 누우들이 있었다. 후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명의 누우들도 많았다. 그들 덕분으로 후손들은 살아 남았다.
일제의 폭압에 항거히다가 조국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후코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에 옥사한 윤동주 시인은 강물에 먼저 뛰어든 누우는 아니었는가?
그는 강물에 먼저 뛰어들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누우들뿐만 아니라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한 시인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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