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구두 한 켤레의 시.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구두 한 켤레의 시(詩)
/곽재구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 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 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판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쑥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 소리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 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 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
❄출처 : 곽재구 시집, 『사평역에서』, 창비, 1999.
🍎 해설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온 뒤, 자신의 낡은 구두를 보며 자기는 잊고 있던 고향의 모습을 자기의 구두가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구두‘를 의인화하여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구두’가 낡도록 바쁘게 살았을 시인은 자신이 듣지 못했던 고향의 강물소리를 구두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고향을 돌아보지 않고 무심하게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있다.
‘구두’가 들려주는 저문 고향의 강물소리가 찰랑찰랑에서 출렁출렁, 덜그럭덜그럭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기 성찰이 심화되고 있다. 청각적 이미지, 감각적 이미지를 시 작품에 접목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 소리가 묻어 있다.
찰랑찰랑 강물 소리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 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 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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