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석류. 석류알을 먹으며 떠오른 사랑.
석류
/정지용
장미꽃 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출처 : 정지용, 『정지용 시집』, 범우사, 2020.
🍎 해설
*새론 : 사이로는.
*녀릿녀릿 : 여릿여릿
*시월 상달 :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는 10월 상달.
이 시는 겨울 밤 화롯가에서 지난 가을에 익었던 석류 열매를 쪼개어 알맹이를 맛보며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석류알을 먹으며 떠오른 사람에 대해 애틋함을 드러내며 그 사람과의 행복한 사랑이 오래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은 석류를 맛보는 과정에서 떠올린 옛 사랑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공간이다. 신라 천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행복한 사랑을 소망하고 있다.
감정이 과잉 노출되지 않도록 절제된 언어로 감각적인 표현을 하려는 시인의 노력이 돋보인다.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여릿여릿’을 활용하여 석류알의 부드럽고 여린 촉감을 표현. 석류알은 ‘작은 아씨’의 가슴속에 남 몰래 깃들인 ‘옥토끼 한 쌍’이라는 표현. 모두 절제된 감각적인 시어들이다.
장미꽃 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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