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몇 개의 이야기 6. 인간의 아픔 그리고 고독과의 단도직입적인 대화.
몇 개의 이야기 6
/한강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韓江 작가의 詩 우수작품이다.
사는 동안 인간은 아픔과 고독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아주 약해진 마음에게 고독이 말을 붙이고 마음을 주고 마음을 걸어 준다면 오히려 그 고독이 인생의 동행자가 될 수 있다는 한강 작가의 詩心.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하다. 한 번 아프고 말 순간이라면, 가혹하지 않다. 그 순간만을 견뎌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픔과 고독의 가혹함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한강 작가는 시집 서문에서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고 썼다. 둥근 적막은 언제나 있다.
한강은 인간 내면의 슬픔을 직시하는 작가다. 인간의 아픔과 고독에 대한 명상을 끊임없이 이어 간다. 그는 그러한 아픔과 고독을 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시에서는 그러한 아픔과 고독과의 단도직입적인 대화로 새 생명을 잉태한다. 물론 그러한 아픔이 잘 잊혀지지 않는 가혹하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가을날의 마지막 시구에서
“지금 고독한 사람은 내일날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낙엽이 떨어져 뒹굴면,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멜 것입니다.”라고 노래했다.
한강 작가는 여기에서 몇 발자국 더 앞서 걸어 나갔다.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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