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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새 건축 <전문 및 해설>

무명시인M 2023. 12. 2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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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새 건축. 사진은 박참새 시인. 박참새 소장 사진.

박참새 건축 <전문 및 해설>

건축

/박참새

"파이드로스,
글에는 그림처럼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네.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보이지. 하지만 자네가 어떠한 질문을 해도 그들은 무겁게 침묵만 지킨다네. 글도 마찬가지야. 자네는 글이 지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나, 자네가 그 내용이 알고 싶어 물어보면, 글은 매번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려줄 뿐이지."
ㅡ 플라톤, 「파이드로스」

 
너는 생각한다. 너는 집을 짓고 싶다. 너는 집을 짓는다는 일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너는 아주 기본적인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곧 결여된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너에게는 자본이 없다. 너에게는 땅이 없다. 너에게는 실리적인 재료도, 그것을 활용할 능력이나 재능도, 미적인 감각도 없다. 너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집이 결여되어 있다는, 그 감각뿐이다. 너에게 유일한 것은 집을 갈망하는 욕망뿐이다.
 
너는 집이 필요하다. 너는 집이 갖고 싶다. 너는 하지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없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 가능성 ㅡ 동시에 불가능성 ㅡ이 유일한 재산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있는 이곳은 광활한 동시에 협소하고, 구체적이면서도 모호하여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네가 자리한 이곳은 발이 닿을 것 같다가도 한 발 한 발 내디딜수록 그 깊이가 더욱 깊어져 허우적대기 십상이고, 도움 구할 주변도 없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너는 혼자가 아니지만 절대로 같이일 수는 없으며,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은 있지만 그것을 경험한 적은 없다. 너는 이 사건들의 모든 총체이며, 과거이자 기억인 이 시간들은 너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너는 집에서 살 것이다. 너는 집을 짓게 될 것이다. 네가 가진 유일한 재료이자 소재인 것으로. 너에게는 말이 있다. 오로지 언어일 뿐인, 너에게만 머무를 뿐인, 그저 그뿐인, 동시에 전부라 버릴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때로는 연결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면서 단절을 초래하는 단 하나의 종말이기도 한, 오로지 말.

그리하여 너는 말로써 지은, 말의 집에서, 살 것이다. 너는 너만의 말로 지은 말의 집에서 홀로 살 것이다. 너는 갇히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상태로, 탈출도 방생도 못 한 채로, 이동도 거주도 불편한 상황을 자초하며, 아름다우며 기괴한 말의 집에서, 그것에 의지하고 외면당하며, 그곳에서, 홀로 살 것이다. 너는 홀로 살며 늙을 것이고 끝을 볼 때까지 늙을 것이고 이따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서 발버둥칠 것이다. 네게 주어진 유일한

집을 저주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너는 극단적이라고 느끼는 일은 단 하나도, 시도해 보지도 성취해 보지도 못할 것이다. 그 집에 있는 너는 그 집에 있을 뿐이며 영원히 그 안에서만 머물게 될 것이다. 네가 오로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유일한 작업은 그 집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때로는 선택하고 떠넘기며 이 집을 지었다. 너는 집을 갖고 싶었다. 너는 집을 가졌다.
 
너는 매일매일 보수한다. 너는 오늘도 새로이 짓는다. 이제 너에게는 집이 있다. 너는 꿈을 꿀 수 있다,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무수한 인물이 등장하는 곳에서, 종료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마음 편안히, 집에서, 자면서, 꿈을 꿀 수 있다.
 
길을 잃지 마세요……. 출구를 아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뿐이에요……. 🍒
 
❄출처 : 2023년 제4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박참새 시집 『정신머리』, 민음사, 2023.

박참새 시집.

 

🍎 해설

통념적인 관점에서 보면 난해시다. 서두에 플라톤의 말을 텍스트 이미지처럼 내 걸고 시작하는 것부터 독특하고 난해하다.
 
시인은 자신의 말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산다고 한다. ‘말로 지은 집’은 시인의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상징물이다. 시인은 시를 쓰며 산다. 시는 말이다. 결국 시인은 자신의 말로 지은 집에서 평생 산다. 이 시는 말의 집에서 산다는 게 실제로 어떤 건지 우선 아느냐고 묻는다.
 
결국 시인은 언어로 남는다. 시인이 어떤 말을 쓰느냐,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느냐가 시 세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말을 하며  살까? 말이 살아 있는, 활성화된 말의 세계가 박참새가 꿈꾸는 시다.
 
난해하지만 흘러넘치는 활화산 같은 언어로 자신만의 고유한 시론詩論을 과감하게 피력한 시인의 에너지가 대단하다. 좀 쉽게 써서 독자들에게 흡인력이 더 강해진다면 문단에 새 바람을 불러 이르킬지도 모른다.
 
이 시에서는 시인인 ‘너’의 탄생을 그린다. ‘너’는 “네가 가진 유일한 재료이자 소재”인 “말”로 집을 짓게 될 것이라는 예언 속에 태어난다. 네가 살아갈 ‘말의 집’은 “연결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면서 단절을 초래하는” ‘말의 감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너’의 소명은 매일매일 집을 보수하고 새로 짓는 일이다.
 
다시 말한다면, “너는 너만의 말로 지은 집에서 홀로 살 것이다.” 축복이자 저주인 이 말로부터 박참새의 ‘나’가 태어난다. ‘나’는 집, 강의실, 병원, 교회를 종횡무진 누비며, 보이고 들리는 대로 잡아챈 말과 글과 이미지를 뒤집고 쪼개고 접붙이며 거침없이 시를 쓴다. ‘나’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전통, 지식, 진리의 언어들을 점유해 그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호소하고 협박한다. 금칙의 원리를 뒤집어 자신을 향해 있던 총구를 돌린다. 이제 저주를 받은 쪽도, ‘말의 집’에 갇힌 쪽도 ‘나’가 아니다. ‘나’는 저주를 벗어난 자일 뿐 아니라 스스로 축복을 내린 자, 진리를 따르는 자가 아니라 진리를 선언하는 자가 된다. 박참새 시인은 과거의 유산을 이어받는 ‘상속자’이자 그에 맞서는 ‘챌린저’로서 우리 앞에 선다. 있던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 올린 다음 다시 무너뜨리며 이 상속과 폐기를 영원히 반복한다. 시인의 정진을 기대한다.
*이 해설은 출판사 민음사의 시집 서평을 많이 참조하여 작성했음을 밝힌다.
 

🌹 최가은 문학평론가 추천글

끊임없이 짜깁기되는 박참새의 ‘나’는 그 자신이 바로 말들의 경합 장소로서 출몰한다. 자신의 돌출을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만드는 모든 보편적 금칙 자체를 우리가 다루어야 할 논쟁의 주제이자 대상으로 만든다. 박참새가 활보하는 고백으로부터 우리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가 누비는 진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Sick House Syndrome’을 “새로움의 기표”이자 “변화의 예측”(「새집증후군」)으로 읽어 내라는 것. 이는 우리의 말, 우리의 토대를 함께 뒤흔들고 ‘나’ 자신의 장소를 바로 이곳에서 끝없이 구성해 내라는 종용이자 명령이다.
 

🌹 허연 시인 심사평

박참새의 시는 난해한 듯하지만 꼭 필요한 이미지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질적인 언어들을 풍성하게 불러내 과감하게 한 화폭에 담아내는 언어적 배짱도 매력 있게 다가왔다. 얼핏 도전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 도전이 오히려 시의 정도를 강조하는 듯한 역설로 다가왔다.
 
한 편 한 편이 각기 다른 드라마처럼 읽히는 점도 좋았다. 박참새의 시는 편편이 다양한 경향, 음가, 감성, 메시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가진 게 많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문 형식의 작품들보다는 짧은 작품들이 더 흡인력이 있었다. 수상을 축하하며 빛나는 세계들을 더 많이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 이수명 시인, 문학평론가 심사평

구애됨이 없이 얼마나 말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직면하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시를 쓰는 것이 오히려 말을 가두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음을 경험하는 까닭이다. 말의 해방을 원하지만 말을 한쪽으로, 시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때, 시가 시인에게 속하게 된다. 말을 풀어놓아서, 시가 시인에게로 흘러가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박참새 시인의 시는 그런 의미에서 방향에의 거절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가 시인에게뿐 아니라, 어떤 특정한 곳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는다. 의미나 사유의 윤곽이 형성되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윤곽을 따르지 않고, 방향을 버린 전면적인 언어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그토록 많은 나와 너와 우리들, 당신, 여자, 남자, 언니 들이 혼재한다. 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주어들은 무차별적으로 충돌하는, 모순된 행위를 살포한다. 그들의 행위는 반복과 부정, 순환, 회귀를 통해 눈앞에서 잉여를, 현재형으로 시현한다. 그토록 자주 실행되는 취소 역시 이 잉여를 부풀린다. 페이지를 뒤덮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치는 활화산 같은 언어이다. 그리고 이 흘러넘침을 통해서 말은 활성화되기에 이른다. 말이 살아 있는, 활성화된 말의 세계가 그의 시다. 결국 시인은 언어로 남는다. 시인이 어떤 말을 쓰느냐,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느냐가 시 세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조강석 문학평론가 심사평

당선작을 선정하기까지 짧지 않은 논의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건축」 외 51편은 처음부터 가장 눈에 띄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선은 다수를 차지하는 형식적 파격이 전면화된 작품들 사이 사이에 보이는 짧은 시편들의 단단함 때문이었다. 예컨대 「전부」와 같은 짤막한 시편에 담긴 반전은 문맥이 통하는 단계에서 작품이 되는 단계로의 8부 능선을 넘고 있었다. 시각적으로 실험을 전경화시킨 작품들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문장 역시 시적 리듬감과 말의 맛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단지 낱낱의 파격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시집 전체를 통독했을 때 그려지는 지향점이 명료하게 드러나 보였다. 확산적이지만 틀림없이 중심을 보유한 묶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묶음 안에서는 산문적으로 명기되지 않은 말이 살아 있는, 활성화된 말의 세계가 그의 시다. 결국 시인은 언어로 남는다. 시인이 어떤 말을 쓰느냐,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느냐가 시 세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있다. 김수영이라는 이름의 상에 값하는 당선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 박참새 프로필

박참새 시인. 28세.

https://legendonkihotte.tistory.com/1030

박참새 출발선 뒤의 초조함

박참새 출발선 뒤의 초조함. 2023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인 박참새 시인이 낸 첫 책. 출발선 뒤의 초조함 /박참새 2023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박참새 시인은 일약 문단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

legendonkihotte.tistory.com

 
너는 집에서 살 것이다. 너는 집을 짓게 될 것이다. 네가 가진 유일한 재료이자 소재인 것으로. 너에게는 말이 있다. 오로지 언어일 뿐인, 너에게만 머무를 뿐인, 때로는 연결을 위한 수단이면서 단절을 초래하는 단 하나의 종말이기도 한, 오로지 말. 그리하여 너는 말로써 지은, 말의 집에서, 살 것이다. 너는 너만의 말로 지은 말의 집에서 홀로 살 것이다. 너는 갇히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상태로, 탈출도 방생도 못 한 채로, 이동도 거주도 불편한 상황을 자초하며, 아름다우며 기괴한 말의 집에서, 그것에 의지하고, 외면당하며, 그곳에서, 홀로 살 것이다.

 

너는 홀로 살며 늙을 것이고 끝을 볼 때까지 늙을 것이고 이따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서 발버둥칠 것이다. 네게 주어진 유일한 집을 저주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너는 극단적이라고 느끼는 일은 단 하나도, 시도해 보지도 성취해 보지도 못할 것이다. 그 집에 있는 너는 그 집에 있을 뿐이며 영원히 그 안에서만 머물게 될 것이다.

너는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너는 집을 짓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말로써 지은, 말의 집에서 , 살 것이다.
그 집에 있는 너는 그 집에 있을 뿐이며 영원히 그 집에서만 머물게 될 것이다.
해야만 하는 유일한 작업은 그 집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는 매일매일 보수한다. 너는 오늘도 새로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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