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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좋은 시 흰둥이 생각

무명시인M 2022. 1. 2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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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좋은 시 흰둥이 생각. Source: www. pexels. com

손택수 좋은 시 흰둥이 생각. 우리는 삶에 몰두한 나머지 주변의 고마운 풍경을 으례히 놓친다. 흰둥이다.

흰둥이 생각

/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

 

출처 : 손택수 시집, 나무의 수사학, 실천문학사, 2010.

 

🍎 해설

흰둥이는 주인집 소년이 자기를 살려 주려고 쫓는대로 달아나다 집이 생각나서인지 주인의 약값 때문이었는지, 그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집으로 되돌아 온다. 흰둥이는 보신탕용으로 팔려감으로써 이제까지 자기를 돌보아준 주인의 약값이 되어 주려고 돌아 왔다고 어린 소년은 생각한다. 어찌 됐건 흰둥이는 돌아와 밥그릇을 달디달게 핥고 있다.

 

더욱이 주인의 약값이 되어 주기 위해서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보신탕용으로 끌려가면서 흰둥이가 주인 아들을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장면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손택수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 시에는 지난 날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담겨 있다. 상처는 가릴수록 끔찍해진다. 이렇듯 시로써 자기 상처를 마주하게 되면 타자의 상처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꿈은 벽 앞에서 생겨난다. 진짜 꿈은 벽을 만나면 담쟁이 덩굴처럼 자라서 그 벽을 넘어서려 한다고 말하며 현재 맞닥뜨린 어려움 앞에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주변에 바보같이 다시 돌아온 흰둥이는 없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 도종환 시인의 해설

이 흰둥이. 어디서 본 적 있는 흰둥이. 어릴 때 우리집에서도 길러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흰둥이.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핥아주던 흰둥이. 정 깊이 들어 헤어지려면 눈물나던 짐승. 어버지의 약값 때문에 가슴 무거우면서도 살려주고 싶던 흰둥이. 바보같이 다시 돌아와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눈빛이 축축이 젖어 있던 그 흰둥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 도종환 편저,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 창비, 200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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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왔다.

 

흰둥이는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나를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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