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좋은 시 "응".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는 시다.
“응”
/문정희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
❄출처 : 문정희 시집, 『나는 문이다』, 민음사, 2016.
🍎 해설
인기있는 시다. 독특한 시다. 이 시를 읽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밝아진다. 미소가 머금어진다. 에로틱해서 그런 건 아니다. 뭔가 매혹적인 데가 있다.
‘응’(yes)은 한국어 가운데 가장 다정다감한 말 중의 하나다.
한국 여자들은 ‘응’이란 말을 자신의 엄마, 아이, 친구, 남편에게 부담없이 사용한다. 각각 억양만 다르다.
시인은 독특한 발상을 한다. 부부생활 시의 체위, 두 세계 ‘ㅇ’과 ‘ㅇ’을 사람(ㅡ)으로 이으니 ‘응’이 되는 이 기막힌 관찰!
ㅇ
ㅡ
ㅇ
시인의 자작시 해설을 들어 보기로 하자.
🌹 문정희 시인의 자작시 해설
공광규 시인 : 문정희 시인님의 “응”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햇살 가득한 대낮/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내가 물었을 때/꽃처럼 피어난/나의 문자/“응”’,이렇게 읽어가다 보면 성애라 할까, 관능, 에로티시즘을 느끼게 돼요. 시인님 시의 이런 면들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문정희 시인: 이 시를 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하하하. 이 시는 샤워를 하다가 급하게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얻은 착상입니다.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노린 것이죠.
한국사회에서 조강지처가 아니면 못 쓰는 시죠. 아마 제가 혼자 살면 이런 시 못 썼을 겁니다. 혼자 살면 잡벌들이 날아들기 때문이죠. 잡벌이 날아들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잖아요.
이것은 부부를 중심으로 건강한 가정을 꾸리는 건강한 삶이어야 쓰는 시죠. 제가 가식과 위선에 살지만 견딜만 합니다.
시를 쓰면서 견디는 거죠. 이 시처럼 나는 첫줄부터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정보가 많은 이런 시대에 시를 안본다고 투정을 부리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시인의 잘못입니다. 시인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죠. 시를 읽었을 때 다른 정보언어들과 차별된, 시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가 있어야 독자가 놀라게 됩니다. 예술가는 자기허기, 자기 부정에 빠져야 하죠.
- 문정희 시인, 공광규 시인과의 대담록, 대산문화 2013년 봄호에서 부분 발췌.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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