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짧은 시 묘비명. 잘 살기도 해야지만 잘 죽는 문제가 중요하다.
묘비명
/나태주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
❄출처 : 나태주, 묘비명(2011),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2015.
🍎 나태주 시인의 자작시 해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일까요?
우선은 먹고 사는 문제이고 잘 사는 날들이고 행복한 삶, 명예로운 자리겠지만 궁극에 가서는 죽음, 내세, 구원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삶인 죽음. 죽음 앞에 인간은 누구나 초라해지고 나약해지고 평등하고 무력한 존재입니다. 다만 불안하고 겁먹은 어린 생명일 따름입니다.
월 빙이란 말 다음에 나온 말은 웰 다잉이란 말입니다. 잘 살기도 해야지만 잘 죽자는 얘깁니다. 오히려 잘 죽는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란 것입니다.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하면서 미리 유서 같은 것을 써보면 어떨까요? 오히려 그런 엉뚱한 시도가 삶을 진지하고 팽팽하게 만들고 끝내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는 이다음에 나의 묘비명으로 후기의 대표작으로 사람들이 알아주는 「풀꽃」시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란 영화에서 여주인공 김인희(배종옥 분)의 수목장 묘비명으로 사용되어서 하는 수 없이 다시 묘비명을 써야만 했습니다.
그 시가 바로 「묘비명」입니다. 이 시도 매우 편안하고 쉬운 한 문장의 작품입니다. 아마도 이 묘비명의 주인은 살면서 ‘많이 보고 싶’은 것이 생애를 두고 가장 풀기 어려운 인생의 난제였던가 봅니다.
그래서 그도 무덤 속에서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묻습니다. ‘너, 나 보고 싶어서 왔지?’ 그러면서 타이릅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참자’고. 그러면 어쩐다는 것입니까? 결국 너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나처럼 무덤 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 죽음의 나라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전언(傳言)입니다.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한 마디 말입니까? 짐짓 단순명쾌해 보이는 짧은 문장 속에 이런 무섭고도 무거운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자는 겁니까? 시간을 아껴 잘 살자는 것입니다. 시는 비록 짧지만 이런 교훈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 나태주 시인의 언론 기고문에서 발췌(2016).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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