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짧은 시 남해 금산. 유명한 시다.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속에 나 혼자 잠기네
❄출처 : 이성복, 남해 금산, 시집 남해금산, 문학과지성사, 1986.
🍎 해설
단편소설을 써 보자. 한 남자가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어서 돌 속에 갇혀 있는 그 여자를 만나려고 돌속에 들어가서 돌이 된다. 그러나 그 여자는 돌속에서 떠나갔다. 그 여자를 해와 달이 끌어 주었다. 그 여자는 배반해서 떠난 게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돌에서 해방되어 인간이 된 것 같다. 이건 자연의 섭리이고 사랑의 운명인 것 같다. 그 남자는 이별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돌로서 푸른 바닷물에 혼자 잠겨 있다. 그 남자는 오늘도 외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라면 나는 돌이 되어 남해 바닷물 속에 잠겨들 수 있다.
이 시를 읽고 난 후의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사랑의 슬픔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 헌신적인 사랑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 이별의 고통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 인간의 진정한 사랑은 이 세상에서 이뤄질 수는 없는 인간의 영원한 숙제라고 느끼는 독자가 있다. 자신은 이 시에서 강조하는 그리움과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시는 뭔가 단정지을 수 없는 함축성과 확장성을 아울러 갖고 있다. 이게 이 시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시는 매력이 있다. 인생과 사랑을 생각하게 해주므로. 또 남해 금산이 아닌 북한산에 가서도 마주보고 묵묵히 앉아 있는 바위들을 쳐다보게 해주므로...
🌹 정끝별 시인의 해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긋난 사랑의 피난처이자 보루가 문득 돌이 되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면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깊은 슬픔이 저토록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근, 남해 금산 돌의 풍경 속. 80년대 사랑법이었다.
- 정끝별 시인, 남해 금산 해설문, 조선일보 2008년에서 발췌.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속에 들어갔네.
그 여자 울면서 돌속에서 떠나갔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속에 나 혼자 잠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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