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좋은 시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좋다
/문태준
나의 안구에는 볍씨 자국이 여럿 있다
예닐곱살 때에 상처가 생겼다
어머니는 중년이 된 나를 아직도 딱하게 건너다보지만
나는 내가 좋다
볍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나의 눈이 좋다
물을 실어 만든 촉촉한 못자리처럼
눈물이 괼 줄을 아는 나의 눈이 좋다
슬픔을 싹 틔울 줄 아는 내가 좋다. 🍒
❄출처 : 문태준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 2015.
🍎 해설
시인은 아주 어려서 타작하는 어머니를 지켜 보다가 볍씨 검불이 눈에 들어 갔나보다. 어머니가 안구를 훅하고 불어 주었지만 안구에는 볍씨 자국이 남아있다.
상처 난 안구에 볍씨 자국이 있지만 그런 눈을 가진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자신과의 인고의 싸움을 숱하게 해야만 했을 것이다.
볍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예쁘지 않는 자신의 눈을 좋아하는 이유는 눈물이 괼 줄 아는 순수성 때문이었다. 눈물로 슬픔을 싹 틔울 줄 아는 참을성 진실성 때문이었다.
우선 나를 있는 그대로 나의 약점까지 인정하면서 나를 사랑해 보자. 나를 사랑한 사람이 타인도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눈에 볍씨가 있다. 타인의 눈물도 인정하고 그 사람이 그 눈물로 싹을 틔우고 있음을 인정할 때 사랑이 시작된다. 그런 마음가짐이 사랑의 시작점이다.
나의 안구에는 볍씨 자국이 여럿 있다
예닐곱살 때에 상처가 생겼다
볍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나의 눈이 좋다
물을 실어 만든 촉촉한 못자리처럼
눈물이 괼 줄을 아는 나의 눈이 좋다
슬픔을 싹 틔울 줄 아는 내가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