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좋은 시 연
박철 좋은 시 연. 우리는 누구나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다.
연
/박철
끈이 있으니 연이다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으며
줄도 손길도 없으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리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
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날아라 훨훨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다시 한번
돌아올 때까지 🍒
❄출처 : 박철 시집,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 해설
우리는 누구나 인연으로 묶여 있다. 그 인연의 끈은 구속은 아니다. 구속과 해방이다.
인연의 끈에서 잠시 해방되어 연처럼 공중을 날며 저마다 날아갈 곳이 있다. 눈물 안에서 우리들 사랑은 더 깊어진다.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고/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다. 결국 너와 내가 각자의 길을 가지만 다시 돌아올 것을 나는 믿는다.
그리움, 사랑이라는 인연의 끈이 있기 때문이다.
🌹 반칠환 시인의 해설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다’니 얼마나 용기를 샘솟게 하는 말인가. 나를 옭아매고 있던 끈들이 나를 날아오르게 해 줄 수 있다니. 정상 모리배의 발림 말 같기도 하고 사이비 교주의 구원 약속 같기도 하지만, 은유가 아니라 실제 연(鳶)의 모습이 저러하다.
연과 얼레가 일년 내내 벽장에 갇혀 있다가 겨울 한 철 날아오르는 것처럼, 우리들 일상은 얼마나 오랫동안 숨죽여왔는가. 한데 나를 칭칭 동여맨 것들, 나를 결박한 세상이 나를 날아오르게 한단다. 바람 거셀수록 더 높이 날아오르는 연을 보라. 둥글게 제 가슴 오려내어야 날 수 있는 방패연을 보라. 세상 모든 아픔을 연료로 불타는 사랑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꼬리를 펄럭이며 훨훨.
- 반칠환 시인, 언론 기고문(2003년)에서 발췌.
🌹 박철 시인
1960년 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1987년 『창비 1987』에 「김포」 외 1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험준한 사랑』 『불을 지펴야겠다』 『작은 산』,『없는 영혼에도 끝은 있으니까』 동시집 『설라므네 할아버지의 그래설라므네』 등이 있다.
천상병시문학상, 백석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끈이 있으니 연이다
날아라 훨훨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다시 한번
돌아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