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재테크
안도현 재테크. 우직한 거꾸로 재테크.
재테크
/안도현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두었다
한 평 남직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출처 : 안도현 시집, 『북항』, 문학동네, 2012.
🍎 해설
얼갈이배추 씨앗을 뿌리고 가꾼다. 어느 날 가보니 연한 얼갈이배추 잎사귀를 뜯어먹기 위해 애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걸 신기해하며 들여다보고 있는데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두었다.
시인은 마치 애벌레 농사꾼이 된 것 같았다. 애벌레가 자라 나비가 되면 시인은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면서 나비의 주인이 된다. 나비는 동네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다. 나비는 동네를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인이 기른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시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시인이 나비의 주인이므로.
시인의 '우직한 거꾸로 재테크'야말로 최고의 재테크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두었다
한 평 남직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