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안도현 재테크

무명시인M 2024. 12. 16.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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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재테크.

안도현 재테크. 우직한 거꾸로 재테크.

재테크

/안도현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두었다

한 평 남직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출처 : 안도현 시집, 북항, 문학동네, 2012.

 

🍎 해설

얼갈이배추 씨앗을 뿌리고 가꾼다. 어느 날 가보니 연한 얼갈이배추 잎사귀를 뜯어먹기 위해 애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걸 신기해하며 들여다보고 있는데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두었다.

 

시인은 마치 애벌레 농사꾼이 된 것 같았다. 애벌레가 자라 나비가 되면 시인은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면서 나비의 주인이 된다. 나비는 동네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다. 나비는 동네를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인이 기른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시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시인이 나비의 주인이므로.

 

시인의 '우직한 거꾸로 재테크'야말로 최고의 재테크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두었다

한 평 남직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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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만두었다
한 평 남직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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