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안도현 꽃밭의 경계

무명시인M 2024. 11. 19.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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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꽃밭의 경계.

안도현 꽃밭의 경계. 내 마음의 경계는?

꽃밭의 경계

/안도현

꽃밭을 일구려고 괭이로 땅의 이마를 때리다가

날 끝에 불꽃이 울던 저녁도 있었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로 삼으려고 돌을 주우러 다닐 때

계곡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공사장을 지나갈때면

목 빼고 기웃거리고 쓰러지는 남의 집 됫박만 한 주춧돌에도 눈독을 들였어라

 

물 댄 논에 로터리 치는 트랙터 지나갈 때

그 뒤를 겅중겅중 좇는 백로의 눈처럼 눈알을 희번덕거렸어라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는 일보다 꽃밭의 경계를 먼저 생각하고

돌의 크기와 모양새부터 가늠하는 내 심사가 한심하였어라

 

하지만 좋았어라

 

돌을 주워들 때의 행색이야 손바닥 붉은 장갑이지만

이 또한 꽃을 옮기는 일과도 같아서 나는 한동안 아득하기도 하였어라

 

그렇다면 한낱 돌덩이가 꽃이라면 돌덩이로 가득한 이 세상은 꽃밭인 것인데

거기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아무 욕심이 없어졌어라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를 짓고 여기와 여기 아닌 것들의 경계를 가르는 일을 돌로 누를 줄 모르고 살아왔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는 다 소용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경계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어라. 🍒

 

​❄출처 : 안도현 지음,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창비, 2020.

 

🍎 해설

고향 마을에 새로 지은 집에 꽃밭을 일구고자 그 테두리에 놓을 돌을 주우러 다닌 일을 그린 시다. 꽃밭이라는 경계의 안과 밖, 꽃밭의 내용을 이루는 꽃과 꽃밭 돌의 상관 관계 등을 궁리하던 시인은 깨달음과 반성에 이른다.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를 짓고 여기와 여기 아닌 것들의 경계를 가르는 일을 돌로 누를 줄 모르고 살아왔어라

 

나도 모르게 형성된 내 마음의 경계를 거두어 보고 싶게 만드는 시다.

 

꽃밭을 일구려고 괭이로 땅의 이마를 때리다가

날 끝에 불꽃이 울던 저녁도 있었어라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는 일보다 꽃밭의 경계를 먼저 생각하고

돌의 크기와 모양새부터 가늠하는 내 심사가 한심하였어라

 

하지만 좋았어라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를 짓고 여기와 여기 아닌 것들의 경계를 가르는 일을 돌로 누를 줄 모르고 살아왔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는 다 소용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경계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어라.

꽃밭을 일구려고 괭이로 땅의 이마를 때리다가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는 일보다 꽃밭의 경계를 먼저 생각하고
돌의 크기와 모양새부터 가늠하는 내 심사가 한심하였어라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를 짓고 여기와 여기 아닌 것들의 경계를 가르는 일을
돌로 누를 줄 모르고 살아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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