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고향
곽재구 고향. 고향에 남아 묵묵히 일하는 착한 남편을 칭송.
고향
/곽재구
흐린 새벽
감나무골 오막돌집 몇 잎
치자꽃 등불 켜고 산자락에 모이고
깜장 구들 몇 장 서리 내린
송지댁네 외양간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콩대를 다둑이며 쇠죽을 쑤고
약수골 신새벽 꿈길을 출렁이며
송지댁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
손시려 송지댁 구들 곁에 쭈그린 동안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쓱싹쓱싹 함지박이 쌀 씻는 모습
쪼륵쪼륵 양은냄비에 뜨물 받는 소리
에헤라 대학 나온 광주 양반에게서도
에헤라 유학 마친 서울 양반에게서도
나는 보지 못하였네
듣지 못하였네 🍒
❄출처 : 곽재구 시집, 『사평역에서』, 창비, 1999.
🍎 해설
* 오막돌집 : ‘오두막’과 ‘돌집’을 합한 것.
이 시는 고향에 남아 힘든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아내를 위할 줄 아는 송지댁네 바깥양반을 그리고 있다.
송지댁네 바깥양반은 천성이 착한 성품이어서 머슴살이 십 년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어둠이 가시지 않는 새벽부터 소에게 먹이려고 쇠죽을 쑤고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을 즐겁게 한다.
그는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고, 아내를 극진히 위한다. 아내에게는 따뜻한 아궁이에 불을 때게 하고, 자기는 찬물에 쌀을 씻는다.
그는 ‘대학 나온 광주 양반’과 ‘유학 마친 서울 양반’보다훨씬 나은 인물이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신분이나 학식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착한 성품에 달려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명심보감에서 벗어나고 있다. 향토적인 시어와 향토적 서정성, 판소리 한 대목같은 시적 리듬감, 인간성의 향기,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송지댁네 외양간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콩대를 다둑이며 쇠죽을 쑤고
약수골 신새벽 꿈길을 출렁이며
송지덕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
손시려 송지댁 구들 곁에 쭈그린 동안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쓱싹쓱싹 함지박이 쌀 씻는 모습
에헤라 대학 나온 광주 양반에게서도
에헤라 유학 마친 서울 양반에게서도
나는 보지 못하였네
듣지 못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