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서울의 겨울 12
한강 서울의 겨울 12. 한강 작가의 문단 데뷔작품.
서울의 겨울 12
/한강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 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
❄출처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 해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韓江 작가의 문단 데뷔작품이다. 한강 작가는 1992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때, 대학신문 연세춘추 주관 연세문화상에서 “편지”라는 시로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고 보니, 윤동주 시인도 연세대 (영문학과) 출신이다. 이 시를 수상작으로 뽑은 정현종 시인과 김사인 시인은 “굿판의 무당의 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열기를 발산하고 있다”는 독특한 심사평을 남긴 바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자질이 있음을 예견한 듯한 심사평이다.
그는 1993년 대학 졸업 후 잡지 샘터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습작을 준비하다 그해 계간지인 문학과 사회 24호 (1993년 겨울호)에 시 5편 ‘얼음꽃, 유월, 서울의 겨울 6, 뱃노래, 서울의 겨울 12’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그는 2013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라는 시집을 냈는데, 이 시집에는 위 데뷔작 5개 중 '서울의 겨울 12'만 수록되었다. 그 만큼 그는 이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서울의 겨울 12]는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의 애절함과 그리움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는 단편소설에서 보는 플롯 plot이 있다. 먼저 겨울이라는 차가운 계절과 사랑의 따뜻함을 대비시킨다. 사랑의 고통과 사랑의 따뜻함을 대비시킨다. 이를 통해 사랑이란 즐거움뿐만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임을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렇다. 사랑은 그리움이고 기다림이고 아예 안 올수도 있는 불확실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감정이다. 사랑이란 그만큼 소중한 존재다.
”네가 온다면 사랑아,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그렇다. 나를 모른 체하는 너의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줄 벅찬 숨결이라는 사랑의 의지를 나는 확고히 갖고 있다.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 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그렇다. 내 사랑은 얼음짱을 조용히 깨는 강물소리와 같은 평화와 안식과 깊이를 갖고 있다.
천둥치듯 내 마음을 전율시킨 한마디의 사랑시는 아니지만 사랑의 내면적인 슬픔을 직시하고 있는 뛰어난 사랑시로 느껴졌다.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 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