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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 26

나태주 좋은 시 촉

나태주 좋은 시 촉.아스팔트를 비집고 솟아오르는 새 싹의 촉을 본 적이 있습니까? 촉 /나태주 무심히 지나치는 골목길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 각질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새싹의 촉을 본다 얼랄라 저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 한 개의 촉 끝에 지구를 들어올리는 힘이 숨어 있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하늘의 서쪽』,토우, 2000. 🍎 해설 촉: 새싹의 끝머리. 이 작품은 어리고 연약한 식물의 싹이 단단한 아스팔트를 비집고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생명과 생명력에 대한 감탄을 노래한다. 무심히 지나치는 작고 어린 새싹의 생명력에 대한 외경의 마음을 담고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어린 촉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이 앞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

좋은시 2022.06.30

나희덕 좋은 시 음지의 꽃

나희덕 좋은 시 음지의 꽃. 희망은 상처에서 시작된다. 버섯처럼. 음지의 꽃 /나희덕 우리는 썩어가는 참나무떼, 벌목의 슬픔으로 서 있는 이 땅 패역의 골짜기에서 서로에게 기댄 채 겨울을 난다 함께 썩어갈수록 바람은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흔들고 이윽고 잠자던 홀씨들 일어나 우리 몸에 뚫렸던 상처마다 버섯이 피어난다 황홀한 음지의 꽃이여 우리는 서서히 썩어가지만 너는 소나기처럼 후드득 피어나 그 고통을 순간에 멈추게 하는구나 오, 버섯이여 산비탈에 구르는 낙엽으로도 골짜기를 떠도는 바람으로도 덮을 길 없는 우리 몸을 뿌리 없는 너의 독기로 채우는구나 🍒 ❄출처 : 나희덕 시집, 『뿌리에게』,창비,1999. 🍎 해설 음지의 꽃은 버섯이다. 이 시는 벌목 당한 참나무 떼에서 피어나는 표고버섯을 형상화한 작품..

좋은시 2022.06.29

이용악 좋은 시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좋은 시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러시아를 떠돌며 장사를 하면서 애들을 키운 조선인 아버지가 임종을 맞는다.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좋은시 2022.06.28

함민복 좋은 시 그 샘

함민복 좋은 시 그 샘. 그 샘에서는 하루에 한 집 먹을만큼만 물이 나온다. 그 샘 /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 ❄출처 :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20. 🍎 해설 이 시는 토속적인 시..

좋은시 2022.06.27

서정주 좋은 시 신발

서정주 좋은 시 신발.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 준 신발. 신발 /서정주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변산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 켤레 사다가 신겨 주시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었습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치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 ❄출처 : 서정주 시집, 『질마재 신화』, 은행..

좋은시 2022.06.26

정희성 좋은 시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정희성 좋은 시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가끔은 이런 유머와 해학시가 필요하다.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정희성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 ❄출처 : 정희성 시집,『돌아다보면 문득』, 창비, 2008. 🍎 해설 정희성 시인은 생활 속에 깃든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시인이다. 이 시는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시다.‘젓’과 ‘젖’의 발음이 비슷하게 난다는 데에서 나온 유머다. 배..

좋은시 2022.06.25

박재삼 좋은 시 첫사랑 그 사람은

박재삼 좋은 시 첫사랑 그 사람은. 당신의 첫사랑의 기억은? 첫사랑 그 사람은 /박재삼 첫사랑 그 사람은 입맞춘 다음엔 고개를 못들었네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네 비단올 머리칼 하늘속에 살랑살랑 햇미역 냄새를 흘리고 그 냄새 어느덧 마음아파라 내 손에도 묻어 있었네 오 부끄러움이여, 몸부림이여, 골짜기에서 흘러보내는 실개천을 보아라 물비늘 쓴 채 물살은 울고 있고, 우는 물살 따라 달빛도 포개어진채 울고있었지 🍒 ❄출처 : 박재삼 시집, 『박재삼 시전집1』, 민음사, 1998. 🍎 해설 첫사랑 그 시절은 정말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나란히 풀섶에서 밤새 이슬을 맞으며 앉아 있는 첫사랑. 손도 잡지 못한 수줍음. 드디어 첫키스의 내음새. 라일락 향기같기도 하고 장미 향..

좋은시 2022.06.24

류시화 좋은 시 소금별

류시화 좋은 시 소금별. 소금별은 과연 어느 별일까? 소금별 /류시화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지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이지 소금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 ❄출처 : 류시화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무소의뿔, 2016. 🍎 해설 소금별은 어느 별일까? 다름 아닌 지구별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들 마음 한 구석에 슬픔을 담고 살아간다. 아무도 모르는 슬픔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슬픔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밝게 살아간다.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기 때문에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인다. 인공위성에서 화성을 내다봐도 반짝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라는 별은 소금별..

좋은시 2022.06.23

서정주 좋은 시 부활

서정주 좋은 시 부활.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시. 서정시. 부활 /서정주 내 너를 찾어왔다 순(順)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드냐. 순아, 이게 몇만 시간 만이냐. 그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눌만 남드니, 매만져볼 머릿카락 하나 머릿카락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 오고…… 촉(燭)불 밖에 부흥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천 린지, 한 번 가선 소식 없든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중에도 열아홉 살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좋은시 2022.06.22

김남조 좋은 시 그대 있음에

김남조 좋은 시 그대 있음에. 사랑이란? 손 잡는다는 것. 맞잡은 손. 그대 있음에 /김남조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마음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삶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 ❄출처 : 김남조 시집, 『김남조 시전집』,국학자료원, 2005. 🍎 해설 사랑이란 무엇인가? 기쁨과 갈망이 동시에 자라나는 마음이 곧 사랑이다. 그것은 근심과 같은 것이다. 근심은 외롭고 고단한 것임으로 누군가의 손을 부른다. 손 잡는다는 것, 그 맞잡은 손에서 열리는 ..

좋은시 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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