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22/05 28

문정희 좋은 시 찔레

문정희 좋은 시 찔레. 사랑의 아픔까지도 포용하고 이를 성숙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어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 ❄출처 : 문정희 시집, 『찔레』, 북인, 2008. 🍎 해설 이별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아픔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좋은시 2022.05.31

유하 좋은 시 자동문 앞에서

유하 좋은 시 자동문 앞에서. 열려라 참깨, 이 주문만 외우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세상이다. 자동문 앞에서 /유하 이제 어디를 가나 아리바바의 참깨 주문 없이도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 세상이다. 언제나 문 앞에 서기만 하면 어디선가 전자 감응 장치의 음흉한 혀끝이 날름날름 우리의 몸을 핥는다 순간 스르르 문이 열리고 스르르 우리들은 들어간다.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들어가고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나오고 그때마다 우리의 손은 조금씩 퇴화하여 간다. 하늘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 하는 날개 없는 키위새 머지않아 우리들은 두 손을 잃고 말 것이다. 정작, 두 손으로 힘겹게 열어야 하는 그, 어떤, 문 앞에서는 키위키위 울고만 있을 것이다. 🍒 ❄출처 : 유하 시집, 『무림일기』, 문학과지성사, 2012. 🍎 해설..

좋은시 2022.05.30

윤동주 좋은 시 아우의 인상화

윤동주 좋은 시 아우의 인상화. 아우에게 묻는다. 넌 커서 무엇이 되겠는가? 사람. 아우의 인상화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출처 : 조선일보 학생란, 연희전문 1학년 윤동주 투고문, 1938.10.17.,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보물창고, 2011. 🍎 해설 *앳된: 어려 보이는. *설은: 서투른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현 연세대) 1학년 때, 조선일보 학생란에 투고하여 뽑힌 시다. 형..

좋은시 2022.05.29

신석정 좋은 시 작은 짐승

신석정 좋은 시 작은 짐승 평화적이면서 자연주의적인 아름다운 목가시 작은 짐승 /신석정 란(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란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 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란이와 나는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 빛 섬들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란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란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 ❄출처 ..

좋은시 2022.05.27

나태주 좋은 시 좋은 약

나태주 좋은 시 좋은 약.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 좋은 약 /나태주 큰 병 얻어 중환자실에 널부러져 있을 때 아버지 절룩거리는 두 다리로 지팡이 짚고 어렵사리 면회 오시어 한 말씀, 하시었다 얘야, 너는 어려서부터 몸은 약했지만 독한 아이였다 네 독한 마음으로 부디 병을 이기고 나오너라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 아버지 말씀이 약이 되었다 두 번째 말씀이 더욱 좋은 약이 되었다. 🍒 ❄출처 : 나태주 시집,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알에이치코리아, 2015. 🍎 해설 나태주 시인은 10여년 전 중병을 앓았다. 생사기로에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에 오셔서 해준 말씀 덕에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시인은 회고한다. "처음 시인이 된다고..

좋은시 2022.05.26

송수권 좋은 시 산문에 기대어

송수권 좋은 시 산문에 기대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붙박이로 수록되어 있는 유명한 시다. 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

좋은시 2022.05.25

장정일 좋은 시 하숙

장정일 좋은 시 하숙. 1970년대 대학가 하숙방의 모습. 지금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숙 /장정일 녀석의 하숙방 벽에는 리바이스 청바지 정장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쓰다만 사립대 영문과 리포트가 있고 영한 사전이 있고 재떨이엔 필터만 남은 켄트 꽁초가 있고 씹다 버린 셀렘이 있고 서랍 안에는 묶은 플레이보이가 숨겨져 있고 방 모서리에는 파이오니아 앰프가 모셔져 있고 레코드 꽂이에는 레오나드 코헨, 존 레논, 에릭 클랩튼이 꽂혀 있고 방바닥엔 음악 감상실에서 얻은 최신 빌보드 차트가 팽개쳐 있고 쓰레기통엔 코카콜라와 조니 워커 빈 병이 쑤셔 박혀 있고 그 하숙방에, 녀석은 혼곤히 취해 대자로 누워 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고 🍒 ❄출처 : 장정일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좋은시 2022.05.24

오장환 좋은 시 고향 앞에서

오장환 좋은 시 고향 앞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우수작품. 고향 앞에서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잣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출처 : 오장환 시집, 『나사는곳』, 헌문사, 1947. 🍎 해설 *예재: 여기..

좋은시 2022.05.23

박노해 좋은 시 두 마음

박노해 좋은시 두 마음.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당신은? 두 마음 /박노해 세상에는 두 가지 리더가 있다 리더가 되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기 위해 리더가 되는 사람 세상에는 두 가지 믿음이 있다 힘의 감동을 믿는 사람과 감동의 힘을 믿는 사람 세상에는 두 가지 힘이 있다 힘을 사랑하는 자와 사랑의 힘을 가진 자 그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달라지니 ❄출처 :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2022. 🍎 해설 박노해 시인은 2010년,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그로부터 12년만인 금년(2022년)에 시인은 『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집을 냈다. 내 안의 나를 흔들어 깨우는 목소리, 인생 경구처럼 느껴지는 깊이 있는 시들이 많다. 이..

좋은시 2022.05.21

조병화 좋은 시 의자 7

조병화 좋은 시 의자 7. 세대교체에 관한 깊이있는 시. 의자 7 /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 ❄출처 : 조병화 시집,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 양지사, 1964. 🍎 해설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시는 세대교체를 다루고 있다. 조병화 시인은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에게 기꺼이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다고 다짐한다..

좋은시 2022.05.20
반응형